▲창극 <춘향실록> 한 장면
국립국악원
국립국악원에서 공연되었던 창극 <춘향실록>은 당신에 대한 좀 다른 이야기를 말해줍니다. 저는 이 창극을 보고 비감한 마음에 사로잡혔습니다. 일전에 KBS 역사스페셜에서 춘향전에 대한 방송을 했습니다. 춘향전 이야기 속 이몽룡이 실제 인물이라는 내용입니다. 창극 <춘향실록>은 역사스페셜에서 다루었던 내용에 영감을 얻고, 기존 춘향전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합니다. 좀더 개연성 있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지요.
<춘향실록>에서 한양으로 떠난 이몽룡은 몇 년 안에 돌아오지 않습니다. 당시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들의 나이를 보면 그렇게 젊은 나이에 급제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소설의 모티브가 된 이몽룡은 늙어서 남원에 한번 들렀다는 기록이 있을 뿐입니다. 그때 방문 기록에 '젊었을 때의 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그 젊은 날의 일이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이 당신과의 사랑 아니었을까요?
후세의 사람들은 당신이 정조를 지키고 꿋꿋이 버티어 금의환향하는 이몽룡의 정실부인이 되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물론 저도 당신이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변사또의 모진 매를 이기지 못했고, 결국 죽음을 맞습니다. 당신의 쓸쓸한 죽음을 이몽룡은 알지도 못했고, 지켜주지도 못했습니다.
당신은 매를 치는 사또에게 외칩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냐고. 맞습니다. 당신은 아름답고 절개가 높을 뿐이지 아무 잘못이 없는 선한 소녀였습니다. 그러나 권력을 가진 사또에게 퇴기의 딸 목숨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나 봅니다. 어찌 보면 사또는 당신에게 현실적으로 편안히 사는 방법을 제안했는지도 모릅니다. 결국 이몽룡은 오지 않을 거란 걸 알았을 테니까요. 그러나 당신은 소신을 굽히느니 죽음을 택한 것입니다.
간질간질 사랑가의 낭만에 마음이 달뜨기도 하고, 한시를 가지고 노는 재치에 감탄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해학에 한껏 웃기도 하면서 당신 이야기 <춘향전>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창극으로 탄생한 <춘향실록>을 보면서, 조선시대 민중의 고초를 생각했습니다. 한없이 맑고 순수한 당신에게 모진 매를 치던 위정자들을 생각했습니다. 죽음으로라도 기개를 꺾지 않던 당신의 정신을 우러렀습니다.
"얼씨구나 좋을시고 어사 낭군 좋을시고. 남원읍내 가을이 들어 떨어지게 되었더니, 객사에 봄이 들어 이화춘풍 날 살린다. 꿈이냐 생시냐? 꿈을 깰까 염려로다."
- <춘향전> 중에서
당신이 설사 매를 맞고 죽었다고 해도, 당신은 우리 마음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당신은 감정에 솔직하였고, 품위가 있었으며, 인간으로서, 여자로서 당당히 살았던 사람입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봄향기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당신이 말했듯이 이화춘풍에 다시 살아나시길.
춘향전
송성욱 풀어 옮김, 백범영 그림,
민음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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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산책하는 삶을 삽니다. 2011년부터 북클럽 문학의 숲을 운영하고 있으며, 강과 사람, 자연과 문화를 연결하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공동대표이자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강'에서 환대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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