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의 중심 도시 삿포로 시내를 오가는 전철.
구창웅 제공
홋카이도 호텔 로비에서 시인 백기행을 떠올리다 생선구이 한 토막과 따끈한 국물, 거기에 정갈한 반찬 몇 가지로 차려진 일본 가정식요리는 맛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음식임에도 엄마 역시 가리지 않고 잘 먹었다. 하기야, 오랜 목욕 후였으니 뭐라도 입에 맞았을 터다.
홋카이도 외곽 온천마을의 밤은 적막할 정도로 조용했다. 창밖으로 부는 바람 소리마저 쓸쓸하게 느껴졌다. 여행 첫날의 피로감 탓인지 엄마는 밤 10시도 되지 않았는데 두툼한 솜이불을 덮고 숨소리도 고르게 잠들어 있었다.
조용히 방을 빠져나와 호텔 로비로 내려갔다. 북적거리는 여타의 여행지라면 사람이 적지 않을 시간인데 홋카이도는 달랐다. 로비마저 괴괴한 침묵에 휩싸여 있었다.
자연스레 이방(異邦)의 고요함과 아름다움을 빼어난 시어(詩語)로 노래한 백기행(1912~1996)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몇 구절이 떠올랐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익숙한 공간을 떠나 낯선 나라로 향하는 사람들은 크건 작건 '소설 같은 로맨스'를 꿈꾸게 된다. 나 역시 홋카이도 여행을 계획하며 낭만적인 몇몇 장면을 꿈꾸었음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건 말 그대로 꿈에 불과했다.
'깨어진 꿈'이 서글퍼 숙소 안락의자에 앉아 잠든 엄마를 곁에 두고 홀로 맥주 몇 병을 마셨다. 나타샤도 없고 당나귀도 보이지 않는 심심한, 너무나도 심심한 홋카이도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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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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