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기 게양9일 오후 강원도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올림픽기가 게양대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1988년과 2018년 허겁지겁 집으로 달려왔지만, 방송사는 미국 선수를 인터뷰하며 시간을 끌었다. 그 사이 무수한 약 광고, 병원 광고, 햄버거 광고, 자동차 광고, 화장품 광고, 스마트폰 광고, 그리고 또다시 약 광고, 병원 광고, 햄버거 광고가 지나갔다. 그렇게 1시간 가까이를 기다린 뒤에야 시작을 알리는 폭죽을 볼 수 있었다.
감동이었다. 한국을 알리는 상징물이 무대 위에 하나둘 나타나고 관객들이 환호할 때, 눈 앞에 1988년 올림픽 개막식이 떠올랐다. 비록 두 개의 행사가 잠시 겹쳐보이기는 했으나, 사실 이 둘은 결코 겹쳐질 수 없을만큼 먼 거리에 있다.
30년 세월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1988년 올림픽은 한국이 세계무대로 막 등장했음을 알리는 무대였다. 비록 행사의 주인은 한국이었으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게 외국인의 시선에 맞춰져 있었다. 내 어린 눈에도 '다른 나라에 잘 보여야 한다'는 강박에 짓눌린, '주인 아닌 주인'의 모습이 딱해 보일 정도였다.
그해 추석 명절을 보내기 위해 시골 할머니 댁에 갔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농가의 회색 슬레이트 지붕에 빨간색, 파란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던 것이다. '외국 손님' 눈에 띌 지 모를, 도로 근처의 집들을 대상으로 '환경미화작업'을 한 것이다. 앞집 돼지 우리도, 옆집 외양간도 온통 원색의 물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