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해도 괜찮아> 속 내지
문학동네
이후 제시는 전문 상담을 받았고 경찰은 대부를 체포했다. 어릴 적 그 일이 아직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 있지만 극복해 나가는 중이라고 한다. 극복하는 방법을 말해 주며 이 책을 읽는 아이들도 자신과 같은 일을 겪었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말하라고 한다. 도와 줄 거라고, 믿어도 된다고.
이 책은 성폭력 피해를 당하는 과정과 협박 당하는 과정,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때 필요한 용기와 도움이 어린 아이 시선으로 담담히 그려져 있다. 성폭력이나 성추행은 숨길 일이 아니라 밖으로 드러내 도움받고 이야기해야 할 일이라고 제시는 이야기한다.
제시가 용기를 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이유는 자기처럼 고통받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서다. 그 아이들에게 '너 혼자만 그런 게 아니야. 다른 사람들에게도 일어나는 일이야'라는 걸 이야기해 줌으로써 성폭력 피해자들이 수치심을 이겨내는 데 도움을 준다.
성폭력에서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역학 관계 중 하나가 '비밀'이다. 가해자가 말하지 말 것을 요구하거나, 피해자가 사실을 밝혔을 때 받게 될 사회 시선이 비밀을 만든다. 이러한 고립은 성폭력으로 발생한 고통과 혼란을 악화 시킨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말하고 나니 너도나도 그랬던 일. #미투가 이어지고 있지만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다. 당시 피해자들은 비밀을 지켰고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성범죄를 다룰 때 피해자 중심이다. '안근태 전 검사 성추행 사건'인데 '서지현 검사 성추행 사건'이라고 한다. 피해자만 주목받는 이런 시선이 그들을 더욱 숨게 만든다.
다른 범죄는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교육한다. 그런데, 성폭력 예방교육에선 피해자 중심 교육이 이루어진다. 제시는 "싫어요"라고 자기 의사를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가해자는 상대가 거절 의사 표시를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을까?
현재 이루어지는 성폭력 예방 교육에서는 피해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을 가르친다. 이는 결국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가 조심하지 않아서 범죄 대상이 됐다고 말하는 꼴이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피해 사실 외에 성폭력에 대한 우리 사회 구조 문제와 시선에도 맞서야 한다.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사회 구조와 사회 정서로 많은 피해자가 포기하고 비밀을 지킨다. 가해자는 숨고 피해자만 드러나는 성폭력 문제를 어디서부터 바로 잡아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검사와 시인이 카메라 앞에서 자기 이야기를 꺼내 #미투가 이어지다 보면 <말해도 괜찮아> 제시가 말한 것처럼 '나만 당한 일'이 아니게 된다. 가해자를 드러낼 수는 없어도 피해자에게 "괜찮아"라는 메시지는 전할 수 있다.
일상이 된 우리 사회 성폭력을 낯설게 하기 위한 "말해도 괜찮은 #미투"를 외쳐본다.
말해도 괜찮아 - 성폭력 피해를 입은 어린이가 들려주는 이야기
제시 지음, 권수현 옮김,
문학동네어린이,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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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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