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새벽의 약속] 한 장면 영화 [새벽의 약속] 트레일러 장면
줄스 다신
당신 며느리, 그러니까 로맹 가리의 아내는 참 멋진 배우더군요. 진 세버그. 그녀는 흑인 인권 운동에 앞장섰는데 그녀의 죽음에 FBI가 개입되었다는 것은 나중에 밝혀졌지요. 슬프게도 당신 아들은 66세에 권총 자살로 불꽃 같은 삶을 마감합니다.
<새벽의 약속>을 읽으며 알게 되었습니다. 로맹 가리의 삶은 당신이 만들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당신은 아들의 교육을 위해 '올인'합니다. 보니 요새 종종 듣게 되는 헬리콥터 맘 같더군요. 이 말 처음 들으시죠? 헬리콥터처럼 자녀의 곁을 맴돌며 성인이 된 자녀까지도 챙겨주는 엄마를 그렇게 부르더군요.
요즘 대학교에는 자녀의 수업 출결뿐만 아니라, 학점에 대해서도 교수에게 따지는 엄마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당신은 어린 아들의 사교육을 위해 온갖 공부를 다 시켜보았더군요. 음악적 재능이 없는 데도 바이올린 교습을 시키고, 춤도 그림도 시켰다지요. 아들이 결국 문학에 안착할 때까지 이것저것 시켜본 거지요.
저는 아들에게 7살 무렵 피아노랑 태권도를 다니게 한 게 전부였어요. 이후엔 아들이 어디 학원 다녀보고 싶다면 다니게 하고, 아니면 말고. 그러니 사교육비가 거의 들지 않았지요. 이제 다 키우고 나니, 조금은 더 다양하게 권해볼 걸 그랬나 싶기도 해요. 고등학교 때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된 아들이, 왜 한 번도 미술학원 보낼 생각을 안 했냐고 묻더군요. 그래도 전 당신처럼 아이 사교육을 시키고 싶은 마음이 없었어요.
나쁘게 표현한다면 당신은 극성 엄마였어요. 아들을 끝없이 앞으로 나아가게 했죠. 지금 관점으로 보면 그다지 좋은 엄마가 아닐지도 몰라요.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저는 당신을 이해합니다. 그러한 맹목적인 희망과 될 거라는 믿음이 없었다면, 어찌 살아갈 수 있었겠어요.
그 날 벌어 그날 먹는 극빈의 삶에서, 아들만은 품위를 지켜주고 꿈만 쫓아 살게 한 당신. 당신은 위대한 어머니입니다. 당신의 희생과 헌신으로 로맹 가리는 오늘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사람들이 기억하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그 엄청난 추동력은 아들을 절망조차 하지 못하게 했더군요.
"어머니의 용기 안에 있는 어떤 것이 내게로 옮겨와, 내 안에 영원히 남았다. 지금도 어머니의 용기가 내 안에 깃들어 살며, 절망하는 것을 막음으로써 내 인생을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 로맹 가리 <새벽의 약속> 민음사. P283
이 책을 같이 읽은 제 친구들 중에 누가 그랬어요. 그래 보았자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지 않았냐고. 당신 아들은 66살에 자살했지요. 저는 자살로 마감된 삶이라고 실패이고 나쁜 삶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당신이 불어 넣어준 삶에 대한 희망과 용기가 없었다면, 그는 어쩌면 이미 젊어서 죽거나 (전쟁 중에 죽을 고비를 많이 넘겼지요), 66년 동안의 빛나는 삶을 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짐작해 본다면, 삶에서 이룰 것들은 다 이루고, 살아볼 만큼 살았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들을 위하여 당신은 엄청난 거짓말을 합니다. 당신의 죽음을 속인 것이지요. 저는 이 대목을 읽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신 아들이 받은 충격은 어땠을까요. 당신은 아들이 절망하지 않도록, 무조건 힘을 내서 앞으로 나아가도록 당신의 죽음 이후에도 꾸준히 편지를 보냅니다. 죽기 전에 미리 써놓았던 편지들을 친구에게 부탁해서 드문드문 보내게 한 것이지요. 정말 그 편지들 덕분에 아들은 '살아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