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최고권력핵심부 기관인 '앙카'가 주관한 집단결혼식에 참석한 젊은 남녀들. (사진 자료 제공 : Documentation Center of Cambodia)
Documentation Center of Cambodia
캄퐁참주에 사는 쁘렉 콤헹씨는 당시 불과 14살 나이에 결혼을 해야만 했다. 그녀는 "결혼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지만, 만약 거부할 경우 죽을 수도 있다는 협박에 어쩔 수없이 결혼을 했다"고 최근 현지신문 <프놈펜 포스트>와 가진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 같은 강제결혼식을 마친 뒤 나이 어린 여성들을 기다리는 건, 정권이 인정한 '합법적인 성폭행'이었다. 당시 앙카는 스스로 부모임을 강조하며,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젊은 가임여성들에게 최소 3~5명의 아이들을 낳으라고 강요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유부녀임에도 강제이혼 끝에 재혼을 강요당한 사례들도 일부 진실로 드러났다.
18세 어린 나이에 강제 결혼한 쁘레아 비히어주 출신 순 벙씨는 "평소 알던 이웃 여성들은 강제결혼을 거부하고 자살하기까지 했다"고 같은 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또 다른 피해여성은 그때의 악몽을 지금까지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그녀는 크메르루주 하급군인이었던 남자의 아내가 되었지만, 남편이 된 남자는 그녀를 사랑하고 보살펴야 할 아내로 여기기는커녕, 오로지 성적노예로만 그녀를 대했다고 털어놨다. 다른 강제결혼여성들과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성폭력 피해자였던 셈이다.
정권이 무너지자, 대부분의 강제결혼 피해자들처럼 결국 그녀 역시 남편과 곧바로 헤어졌다. 하지만, 정권붕괴 직전 둘 사이에는 원치 않던 생명이 잉태됐다. 이제는 성인이 된 딸은 아버지의 얼굴을 전혀 기억 못한다. 그녀는 아버지의 생사 여부도 알지 못한다고 현지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런 가운데, 지난 2017년 4월 크메르루즈 정권하에서 자행된 강제결혼 범죄를 다룬 50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가 제작돼, 캄보디아 현지사회는 물론, 국제인권단체들 사이에도 적지 않은 관심과 파장을 일으켰다. 주캄보디아영국대사관이 자금을 지원해 제작된 <침묵을 깨다(원제 Breaking the Silence)>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다. 앞서 언급한 강제결혼 피해자들 중 한 명인 몸 분도 출연해 눈길을 끌었다.
이름과 신분을 밝히기를 거부한 다른 희생자들과 달리, 그녀는 카메라를 향해, 담담하면서도 매우 용기있게, 자신의 숨은 과거를 밝히고, 잊을 수 없는 악몽의 순간들까지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녀는 말미에 "법의 심판을 통해 반드시 정의가 실현되길 원한다"고 말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그동안 과거를 숨기고 살아온 많은 강제결혼 피해여성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한편, 캄보디아 사회가 스스로 서로의 아픔과 상처를 공유하고 치유할 수 있도록, 상호 공감대를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 유명 영화배우이자, 현재 영화감독으로도 활약중인 안젤리나 졸리 역시 이 다큐멘터리 속 인터뷰에 응해, 과거 아픔을 딛고 용기를 내 출연을 결심한 여성피해자들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 모두에게 영웅이다." (참고로, 영화 <툼 레이더> 출연 당시 현지 로케가 인연이 되어 캄보디아 남자아이를 입양하고, 이후 캄보디아국적까지 취득한 졸리는 2017년 크메르루즈의 잔혹상을 소녀의 시각을 통해 고발한 영화 <처음, 그들은 나의 아버지를 죽였다 (원제 First They killed my father)>를 공동제작, 금년 골든 글로브 외국영화부문 후보작에 오른 바 있으며, 캄보디아 여성인권신장에도 관심이 많다. 현재 그녀는 '분쟁 지역 성폭력 방지 프로그램(Preventing Sexual Violence Initiative)'의 공동 설립자이기도 하다.)
'강제결혼'은 성폭력에 버금가는 또 다른 반인륜적 범죄과거 역사를 되짚어보면, 전쟁기간 중 여성들이 성폭력의 대상이 된 사례는 이루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다. 하지만, 강제결혼만큼은 다른 나라에서는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매우 특별한 형태의 성폭력 범죄임이 틀림이 없다.
최근 들어, 크메르루즈 정권이 저지른 강제결혼정책과 관련, 인류의 보편적 정서와 인권을 무시한 채 절대 권력을 가진 국가집단이 획일적으로 주도해 저지른 반사회적 중대범죄였다는 사실을 밝히는 노력과 함께, 뒤늦게나마 정의를 구현하려는 움직임들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관심과 열기에 부응해 피해여성들의 심리적 안정과 치료를 위한 NGO 단체들의 관심과 활동도 현지사회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근래에 와서는 사회적 관심과 반향을 일으키는 수준과 범주를 넘어, 문화예술계에 영감을 주는 소재로 점차 번져가는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