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동지회복음동지회 20주년 기념 앨범과 복음동지회 회원들, 당시 문익환은 유학 중으로 사진에 덧붙여져 있다(1949년 9월 20일, 앞줄 맨 왼쪽 장준하).
(출처:복음동지회 20주년 앨범 스캔)
장준하는 국가원수모독죄로 투옥된 상태에서 국회의원에 옥중 당선되기도 하고, '유신헌법의 민주적 개정을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에 돌입, 불과 열흘 만에 무려 40만 명의 서명을 받기도 했다. 그리하여 유신 대통령 박정희와 대적하는 재야 대통령 장준하라 불리게 된 터라 둘 사이에는 공적이면서도 사적인 갈등이 한없이 증폭되지 않을 수 없었다. 박정희의 긴급조치 제1호는 장준하에게서 받은 충격 때문에 발동되었고, 체포 제1호도 장준하였다.
그 긴급조치가 얼마나 가공할 폭거에 속했는지 모두 설명하기 어렵다. 모든 형태의 집회와 파업을 불법으로 선포했고, 정부를 비판하면 앞뒤 가리지 않고 보복을 가했다. 문동환과 안병무가 정치교수 1호가 되어 1975년 6월 12일자로 학교에서 쫓겨나고, 서남동, 이우정, 이문영 등도 실직 교수가 되었다.
유신의 칼날이 미친듯이 춤을 추던 때였다. 문동환의 주도로 해직교수들이 중심이 된 '갈릴리 교회'가 처음 모이던 날, 8월 17일 장준하가 포천 약사봉에서 실족사 당했다는 전화를 받는다.
장준하 대타
▲영정늦봄의 책상에 항상 놓여있던 장준하 선생의 영정사진
사단법인 통일의 집
"허! 준하가 죽었어. 세상에! 장준하를 데려갔어."문익환은 당장 실족사 현장에 달려가서 세세히 살핀 결과 이를 군사독재정권에 의한 타살이라고 확신했다. 높은 언덕에서 굴러 떨어졌다는데 매고 있던 '마호병'(안에 유리가 있는 물통)이 하나도 상하지 않았다. 귀 뒤의 급소에 못으로 구멍이 뚫린 듯 타박상이 있고,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때 생기는 상처도 없다. 그가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도 똑딱거렸다. 게다가 양 팔꿈치에 생긴 꽉 조여진 자국은 무엇인가.
문익환은 이때 민족의 위기상황을 느꼈다. '김구 선생처럼 장준하도 죽인다 이거지!' 그래서 관을 묻으면서 약속했다. '네가 하려다 못한 일을 이제 내가 하마!' 문익환은 그의 장례위원장을 맡았다. 장례를 마치고 가지고 온 장준하의 영정사진을 문익환의 책상 위에 놓았다. 그리고 마치 산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듯이 말을 걸고는 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많은 민족들이 오늘도 살아남은 이유는 나름대로 간직해둔 정신적 유산이 있기 때문인데, 우리의 유산은 3.1운동이 그 절정이었다. 그것을 낡은 역사 속에 묻어두기만 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지 않은가.' 당시 성서번역에 여념 없던 문익환이 서재를 박차고 나온 까닭이 여기에 있었다. '군사독재의 쇠사슬에 눌려서 말 한 마디 못하고 있는 질식할 것 같은 때에도 사람이 살았다는 흔적은 후세에 남겨야 될 것 아닌가?'
▲늦봄 연설문익환은 장준하의 죽음으로 역사의 전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단법인 통일의 집
그렇게 문익환은 늦봄이 되었다.
늦봄은 장준하의 영정 사진을 보며,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했다. 그리고 3.1절을 맞아 박정희와 유신 정권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글을 작성한다. 바로 '3.1민주구국선언'이다. 늦봄 문익환은 3.1민주구국선언의 초안을 작성하며, 험난한 권력과의 싸움, 생명과 정의 그리고 평화를 향한 여정을 새롭게 시작했다.
이 못난 것아 -다시 장 형의 영전에 바치노라
|
자넨 어쩌자고 대낮에 눈감고 주먹질인가? 그 흔한 장미꽃 웃음이라도 뿌릴 일이지.
자넨 어쩌자고 바람보고 칼 빼드는가? 고맙게도 절로 자라 주는 머리라도 날릴 일이지
자넨 어쩌자고 종다리 지저귀는 앞산보고 눈흘기는가? 뒷산 서낭당에 가서 침이라도 뱉을 일이지.
자넨 어쩌자고 넝쿨째 굴러드는 복을 발길질인가? 아내더러 호박국이라도 끓여 달랠 일이지.
누구나 가는 길 삼삼오오 짝지어 산천경개나 구경하며 슬슬 가도 될 일을
이 못난 것아 자넨 어쩌자고 그리 서둘러 혼자 가는가?
1976.1.21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1
문익환 목사와 박용길 장로의 유택을 박물관으로 새롭게 단장하고자 합니다.
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공유하기
'재야 대통령' 장준하 이어 역사에 선 문익환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