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밝히는' 중국인?사찰 내에 재물신을 모신 법당이 세워져 있을 정도로, 중국인들에게 돈은 이미 종교가 되었다. 사진은 따리 숭성사의 재신전 모습이다.
서부원
돈이 없으면 하산도 힘들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니 다시 매표소가 앞을 막아선다. 영화세트장이 자리한 창산 입구까지 가는 셔틀버스를 이용하라는 건데, 그곳까지 가야만 택시를 탈 수 있다. 요금 10원(한화 약 1,700원)을 내고 셔틀버스를 타지 않으면 영락없이 1km 남짓을 걸어 내려와야 한다. 말하자면, 구간 구간을 쪼개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창산 한 곳을 다녀왔을 뿐인데, 그날 호주머니에는 별의별 티켓으로 가득했다.
흥정에 관한 한, 따리 인근에 자리한 시저우(喜洲)를 찾아갈 때의 경험도 빼놓을 수 없다. 시저우는 일상에서 화관을 쓴 모습과 화려한 색상의 의복으로 유명한, 중국 내 소수민족 바이족이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이다. 이미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로 넘쳐나는 따리고성 주변에 비해 덜 상업화되어 있고, 마을길을 걸으며 현지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어 매력적인 곳이다.
시간에 쫓겨 택시를 탔더니 다짜고짜 100원을 달라며 흥정을 걸어왔다. 20km 남짓 되는 거리라 익히 경험한 바대로 미터기를 켜지 않으리라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얼토당토 않는 요금에 기가 막혔다. 곧장 차에서 내리려고 했더니, 90원에서 80원으로 마치 경매장에서 호가하듯 액수가 춤을 추었다. 신뢰가 허물어진 상태에서 더 이상 차에 머무를 순 없었다.
또 다시 사서 고생이 시작됐다. 따리고성 내 관광안내소를 찾아가 방법을 물었다.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택시를 타면 편리하다고 답했다. 그도 상황을 잘 아는지, 만약 택시를 이용할 거라면 흥정을 잘 해야 한다며 귀띔해주기도 했다. 한편, 주변 마을을 오가는 미니버스가 다니기도 한다면서, 관광안내지도 뒷면에 길을 그려가며 친절하게 타는 곳을 알려주었다.
시저우까지의 버스 요금은 고작 7원(한화 약 1,200원)이었다. 비록 마을 안까지 들어가지 않고, 1km 가량 떨어진 입구에 내려 걸어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멋모르고 택시를 탔다면 어쩔 뻔했나. 정류장에 내리자, 늘 그렇듯 '연계 교통편'이 마련되어 있었다. 낡은 오토바이 택시가 줄지어 버스에서 내리는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을까지는 8원이었다. 이마저도 깎아야 하나 싶어 순간 고민이 되기도 했다.
오토바이 택시가 내려준 곳은 매일 바이족의 전통 공연이 열린다는 조그만 소극장의 매표소 앞이었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바이족 전통 복장을 한 직원이 나와 공연 관람을 부추겼다. 여러 소수 민족의 삶을 무대에 올리는 건 이 지역의 대표적인 관광 상품으로, 윈난 지역을 여행하다보면 어디서든 쉽게 만날 수 있다. 하마터면 시저우 마을의 입장료로 여길 뻔했다.
관람료는 95원(한화 약 16,000원). 매표소조차 허름할 정도로 주변 분위기가 을씨년스러워 손사래를 쳤더니, 은근슬쩍 다가와 50원으로 깎아주겠다며 손목을 이끌었다. 안내판에 붉은 글씨의 지방정부 이름과 함께 가격이 또렷하게 적혀 있는데도 스스럼없이 흥정을 걸어오고, 이내 반값으로 떨어지는 황당함에 혀를 내둘렀다. 여차하면 반의 반값으로 내려갈 태세였다.
가격과 요금에 대한 신뢰가 허물어지다보니, 어디를 가서 무엇을 사고 먹든 마음 한 구석엔 늘 찜찜함이 남는다. 이것도 공부고, 여행의 재미라며 눙칠 수도 있겠지만,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바가지에 대한 걱정에 매일 가계부까지 쓰는 습관이 생겼다. 그래선지 여행에서 돌아오면, 어디를 갔느냐보다 무슨 일을 겪었고, 경비를 얼마나 썼느냐가 더 오래 기억되는 것 같다. 어쩌면 자유여행자의 숙명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