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들이여, 여성혐오에 저항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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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적 지향을 비교적 일찍 깨달은 편이지만 같은 동성애자들과는 꽤 시간이 지난 후에 함께 어울렸다. 처음 공동체 생활을 시작한 곳이 여성 단체였고 주변에는 게이들보다 페미니스트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혹은 여성주의자인 남성 동성애자이거나. 그래서 다른 게이들은 어떻게 사는지에 대한 감이 별로 없었다. 그저 막연히 나와 비슷하겠거니 생각할 뿐이었다.
이런 상상이 확 깨진 것은 몇 년 전. 우연히 인터넷을 통해 한 남자를 만난 이후였다. 그는 나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고 스킨십과 입맞춤을 시도했다. 그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기에 응했지만 문제는 다음에 발생했다. 그 남자는 내게 묻지도 않고 나와 성관계를 맺으려 한 것이다.
여기까지만 이야기하면 한 사람의 착각 탓에 벌어진 해프닝 정도로 끝날 일일 것이다. 나는 간접적으로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표하기 위해 몸을 뒤로 뺐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갑자기 내 뺨을 때렸다. 그리고는 갑자기 음담패설이 섞인 욕설을 하며 성관계를 종용하기 시작했다. 머리가 멍해지고 몸에 힘이 풀렸지만 마지막 남은 정신을 붙들어 그에게 그만하라고 화를 냈다. 그리고 그 남자가 멈칫했을 때 짐을 챙겨 집 밖으로 나왔다.
이 사건이 뇌리에 깊게 박혔던 것은 그가 저지른 폭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가 했던 말들은 대부분 이성애자 남성들이 여성들을 대상으로 던지는 혐오적인 비하였기 때문이다. 여성의 성기를 멸시하는 단어나 혹은 '걸레'와 같은 표현들. 차마 옮기지 못할 그 단어들을 떠올리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게이가 왜 저런 말을 쓰는 거지?"누구도 여성 혐오 문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돌이켜 보면 그 질문은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순진한 것이었다. 오래전부터 한국 사회는 여성 혐오가 만연한 공간이었다. 게이들이 다른 나라에서 따로 살다 때가 되면 한국에 등장하는 존재는 아니지 않는가. 나를 포함해 다른 남성 동성애자들도 경각심이 없다면 그런 문화를 내면화할 가능성은 높고 그래서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여성 혐오 발언을 했을지 모른다.
실제로 다른 게이들을 만났을 때 그들이 무심결에 '김치녀'나 '된장녀'와 같은 말이 쓰는 상황을 종종 목격하곤 했다. 나의 경우는 그나마 운이 좋아서 대부분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은 사람들과 함께했고, 그래서 잘못을 지적하면 늘 사과와 철저한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하지만 이런 그룹에서 떨어져 나와 다른 환경에서 생활하는 게이들을 만나면 '질 나쁜' 이성애자 남성들과 별로 다를 게 없는 경우도 많았다. 말하자면 개인에 따라 정말 천차만별이다.
이런 상황에서 성소수자 공동체 내 게이들의 여성 혐오 발언에 대한 문제 제기가 종종 이어져 왔다. 가장 최근의 사례는 모 대학의 성소수자 동아리에서 등장했다. 동아리 단톡방 내부에서 남성 동성애자들이 혐오 발언을 한 사건이 SNS를 통해 폭로된 것이다. 내용을 보면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이들은 여성 성소수자들이 보는 앞에서 성폭행을 농담거리로 소비했고 성매매 여성을 비하하는 단어를 썼다. 이에 대한 비판이 있자 '없던 여혐(여성 혐오) 생기겠다', '폭력적이다', '일상 생활은 가능하냐'는 식의 전형적으로 옳지 못한 반응이 뒤이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해당 동아리는 이에 대한 입장을 내놓았지만 이 역시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왜 게이인 우리가 여성 혐오에 더욱 대항해야 하는가성소수자 동아리든 어느 곳이든 여성 혐오는 반드시 근절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나는 이번 공론화에 지지를 보내며 비슷한 문제를 겪는 다른 공동체들 역시도 재발 방지를 위한 자정 작업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간 주장도 하고 싶다. 게이들이야말로 더욱 여성 혐오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맞써 싸워야 할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혐오 받는 사람이 그것을 답습해선 안 된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성소수자, 특히 남성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와 여성 혐오는 구조적으로 긴밀하게 얽힌 문제이기 때문이다.
가령 동성애자들의 성적 욕망과 실천이 왜 일탈적인 것으로 여겨지는지 질문해보자. 이는 우리 사회가 오직 이성애만을 정상으로 간주하는 이성애 중심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성애 중심주의의 이유이자 동시에 배경이 되는 것은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다. 이 속에서 여성과 남성이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인구를 생산하거나 대를 잇는 것은 사회적 책임이자 유일하게 정상적인 성적 결합으로 인정된다.
성소수자 혐오 세력이 저출산 문제와 사회적 위기를 운운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인구 재생산의 목적을 벗어난 성적 행위는 억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상 가족 이념이 공고한 사회에서 성소수자의 존재는 그 자체로 심대한 위협이 되거나 혹은 탄압하기 쉬운 대상이 된다.
한편으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이런 식의 이성애 중심·정상 가족 중심 체계는 가부장제를 통해 실현되며 이는 필연적으로 여성에 대한 억압을 동반한다는 사실이다. 부계를 중심으로 조직된 가부장적 사회는 여성에게 아내이자 엄마, 딸로서의 역할을 부여하고 강요한다. 이 과정에서 여성의 성과 욕망, 주체성은 강력하게 통제된다.
이유는 딱히 없다. 여성은 '원래 그런 존재'라는 식이다. 여성 혐오 문화는 이런 환경에서 태동한다. 통제를 벗어난 여성, 불필요한 성적 욕망을 드러내는 여성, 가만히 자기 역할을 하지 않고 남자처럼 주체적인 여성은 어딘가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멸시와 희화화 낙인이 뒤따른다. 대신 수동적이고 취약한 여성들이 계속해서 이상적인 성적 대상으로 소비되고 소환된다.
페미니스트로서 군형법 92조의6에 반대하는 이유이 같은 현실의 종합적인 결과물이 '군형법 92조의6'의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 조항이 '항문성교'를 '기타 추행'과 같이 처벌 대상으로 놓은 것은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남성들 간의 성행위는 말 그대로 추행(醜行)이기 때문이다. 남성은 오직 삽입의 주체만이 될 수 있을 뿐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 말을 거꾸로 뒤집으면 어떤 의미가 될까. 삽입의 대상, 성적 대상은 오직 여성뿐이라는 뜻이 된다. 이런 식의 논리라면 여성은 성적인 관계 혹은 남성과의 관계에서 절대로 능동적인 행위자나 주체가 될 수 없다. 군형법 92조의6에 대해 많은 여성 단체와 페미니스트들이 비판을 내놓았다. 여러 이유가 있었으나 개인적으로 나는 이 조항이 동성애를 억압함과 동시에 여성 혐오의 연장에 있기에 반대한다.
또 서두에서 언급했던 나의 경험도 마찬가지다. 내가 그 일을 언급했던 것은 단지 그 남자가 '여성 혐오적 욕설'을 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말이 그가 나를 억누르고 마음대로 통제하려는 과정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에게 위계적인 성적 권력 관계는 오직 남성과 여성 사이의 것뿐이다. 그래서 그 남자는 여성 혐오적인 표현으로 나를 지칭했다. 이 구도는 익숙하다.
많은 경우 이성애자 남성들은 모든 게이들이 지나치게 여성적이라는 편견을 보이며 이를 이유로 멸시를 드러낸다. 실제로 게이들이 어떤가와 무관하게, 그들은 사회가 규정한 남성성이 결핍된 존재로 지목되며 여성과 등치된다. 그래서 하위의 존재로 치부된다. 혹은 과잉 성애화된 게이들이 아무 남자나 건드리고 다니며, 그렇기에 자신들의 남성성을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근거 없는 공포가 희화화되어 표출되기도 한다. 나는 내가 겪은 일이 게이들의 여성 혐오가 때로는 다른 당사자를 위협하거나 혹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개선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음을 명백히 드러낸 사례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