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현 통영지청 검사가 30일 오후 JTBC뉴스룸에 출연해 검찰내 성추행 피해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JTBC 화면
'성폭력'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여성들흔히 '강간'을 의미하는 협소한 의미의 성폭력도 그러했지만 성추행과 디지털 성범죄 등 광범위한 성폭력을 포괄하면 그 역사는 더욱 최근까지 이어진다. 1991년 미국에서 직장 내 성추행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지지 조차 않았던 시절, 변호사 아니타 힐은 클라렌스 토마스 연방 대법관 인준 청문회에서 그의 성추행 사실을 증언했다. 한국은 1993년 '서울대 신교수 성희롱 사건'에 대한 고발과 함께 직장 내 성추행 문제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 올랐고, 98년에 이르러서야 대법원의 판결로 가해자의 유죄가 확정됐다.
변화는 명백했다. 힐의 증언 이후 법원의 성추행 보상 판결과 기업 내 성추행 방지 교육은 크게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신교수 성추행 사건에 대한 판결 이후, 한국에선 '남녀고용평등법'과 '남녀차별 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에 '직장내 성희롱 예방과 처벌 조항'이 신설되었다.
흥미롭게도 아니타 힐은 할리우드에서 일어난 '#MeToo'(미투) 운동과 'Time's Up'(타임즈업) 캠페인의 결과로 만들어진 '성추행 근절과 일터에서의 성평등 발전을 위한 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았다. 언급한 두 운동은 할리우드의 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이 30년 가까이 많은 여성들에게 성폭력과 성추행을 저질렀음이 폭로된 이후 등장했다.
운동가 타리나 브룩이 처음 제안한 'Me Too' 운동은 성추행이나 성폭력을 겪은 여성들이 '나도 그런 일이 있었다(Me too)'라고 말한다면 사람들에게 문제를 제대로 알릴 수 있을 것이라는 취지로 시작되었다. 'Time's Up'은 이렇게 드러난 피해들에 마주하고 실질적인 법적 조치에 나서 성폭력과 성추행, 직장 내 성차별이 만연한 시대를 종식시키는 것(Time's up)을 목표로 진행한 캠페인이다.
'여성'이기에 당하는 폭력한국에서 일어난 '#OOO_내_성폭력'의 미국판이라 할 '#MeToo' 캠페인, 최근 이 두 해시태그가 나란히 등장한 일이 발생했다. 29일 서지현 검사는 검찰 내부통신망을 통해 8년 전 성추행을 겪었으며, 이로 인해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서 검사의 말에 따르면, 2010년 한 장례식장에서 법무부 장관을 수행하고 온 안태근 당시 법무부 정책기획국장은 그녀의 옆자리에 앉아 강제 추행을 저질렀다. 이후 간부들을 통해 사과를 받기로 했으나, 돌아온 것은 사무감사에서의 이해할 수 없는 지적과 검찰 총장의 경고 그리고 이로인한 전결권 박탈과 부당한 인사조치였다는 주장이다.
당시 서지현 검사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사건을 덮고 가는 게 나을 것'이라는 주변의 만류로 그러지 못했다고 한다. 또한 서 검사가 JTBC 뉴스룸과의 인터뷰에서도 언급했듯, 검찰은 피해에 대해 쉽게 증언할 수 있는 조직이 아니었다. 그는 성폭력 사건이 발생해도 은폐되기 일수였으며, 오히려 피해자를 향해 '남자 검사들 발목 잡는 꽃뱀이다'라는 비난이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언뜻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나 한국에서 검사는 막강한 사회적 권력을 지닌 이들이 아닌가. 여기에 검찰은 어느 조직보다 엄정해야 할 법 집행 기관이기도 하다. 하지만 조직 내 성폭력을 가능하게 만드는 권력은 언제나 상대적이다. 객관적으로 힘도 지위도 있어 보이는 여성일지라도 그 사람보다 직급, 연령 심지어 단지 성별 때문에 더 높은 위계를 점하는 남성들은 어느 분야에나 존재한다.
일례로 배우 레아 세이두는 프랑스 미디어 업계를 거머쥔 조부와 성공한 사업가인 아버지 밑에서 성장했을 정도로 막강한 배경을 지녔지만, 웨인스타인이 업계에서 가진 힘 때문에 그의 성추행을 피할 수 없었다고 증언했다. 또한 서지현 검사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 형식의 글을 통해 '후배 검사가 자신을 안아주지 않으면 차에서 내리지 않겠다'고 행패를 부린 적이 있음을 증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