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성 지성들과의 주제별 대화를 담은 안희경 작가의 책 <어크로스 페미니즘>(글항아리, 2017).
글항아리
안희경 : 오늘 당신이 조국에 대해 말할 때 사용한 언어들은 꽤 암울한데요. 희망을 말할 수 있을까요?
리베카 솔닛 : 물론이죠. 그 무엇도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으니까요. 1990년 새해를 맞아 돌린 제 연하장엔 체코슬로바키아 거리에 있는 스탈린의 흉상 사진이 있었습니다. 그의 목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죠. "그 무엇도 영원하지 않다." 희망은 모든 것이 좋아지리라는 전망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행동이 '차이를 만든다'는 사실을 아는 게 바로 희망이죠. 그리고 세상에는 싸울 가치가 있는 일이 있습니다.
어쩌면 트럼프는 이 나라가 맞을 수 있는 최악의 재앙인지도 몰라요. 반면에 그가 3개월 안에 신경쇠약에 걸릴지도 모르고, 프라이드치킨을 먹다가 목에 걸려 죽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외교관 영부인의 엉덩이를 움켜쥐다 망신당해 하야할 수도 있고요. 탄핵을 당할 수도 있겠네요. 엄청난 갈등과 분열을 조장했으니까요.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아는 것이 있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최악으로 만드는 데 협력하는 행위라는 것. 참여하고, 참여하지 않는 데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어크로스 페미니즘> 64~65쪽
안희경 : 당신은 1인당 GDP가 증가할수록 국민 삶의 질이 향상된다는 세계 경제 주체들의 시각을 바꿔냈습니다. 불평등이 심한 국가에서는 경제성장이 전체 국민의 생활을 나아지게 하는 데 별 역할을 못한다는 것을 증명해 냈죠. 대안으로 '인간개발접근법'을 제시했고, 지금은 UN과 EU를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매년 인간개발지수(HDI)를 발표합니다. 경제, 환경, 자원, 노동여건 등 모든 분야에서 위기가 만연한 시대에 어떻게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요? 어떻게 약자들이......
마사 누스바움 : (말을 자르며) 바로 그 모든 약자를 존중함으로써요. 경제적 정의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누구는 질 낮은 교육을 받아도 되고, 일할 기회가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동안, 평등을 추구하는 일은 어떤 분야에서건 대단히 어려워집니다.
인간의 역량을 개발하기란 참으로 복잡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 매우 품위 있을 수 있지만, 다른 면에서는 자못 끔찍할 수도 있거든요. 저는 노동계급의 삶이 반드시 나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틈에서 자랐어요. 하지만 그들은 경제적 평등을 주장하면서도 엄청나게 성 차별적이고, 호모포비아적이었답니다.
모든 사람이 인간으로서 품격을 누리는 삶의 기본을 보장받는다면, 세상의 두려움은 줄어들 거예요. 두려움이 줄면 서로의 유대가 강화되고 혐오도 줄어들죠. 우리 자신이 취약할 때 다른 집단에게 그 탓을 돌리고 싶어하는 욕망이 생기거든요.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의료 시스템을 강화하고, 삶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최저임금을 보장하고, 교육의 기회를 모두가 누리게 하는 안전망이 잘 갖추어져야 합니다. 그러면 불안은 훨씬 더 줄어들 겁니다. 사람들은 희생물을 훨씬 덜 찾게 될 거예요.
한편으로, 우리는 인간의 성과 장애, 동물에 대한 시선 등 여러 분야에서 느끼는 불안을 각각 분리해서 생각하고, 그에 대처해야 합니다. 인종 갈등에 주거분리 문제가 얽혀있듯, 각각의 갈등에는 서로 다른 요인이 있습니다. 대안도 달라질 수밖에요. 그러니 지금 당장 모든 차원에서 진보를 이루자고는 쉽게 이야기할 수 없죠.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추며 꾸준히 싸워나가는 겁니다.
<어크로스 페미니즘> 151~152쪽
안희경 : 또 다른 성차별주의 아닐까요? 여성만이 옳고, 여성만이 희망을 만들 수 있다는?
반다나 시바 : 아니죠. 현실을 직시하는 겁니다. 남성들이 거부감을 가질 일이 아니에요. 그들도 함께 에코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습니다. 에코 페미니즘은 여성이냐 남성이냐의 문제가 아니에요. 에코 페미니즘은 우리가 가진 마음의 종류입니다. 단순합니다. 알아차리는 거예요. 자연은 살아있고, 창조적이며,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생산한다는 사실을.
자연은 정복해야 할 대상이고, 생명이 아닌 원자재이므로 마구 써버려도 된다는 패러다임, 이는 여성은 집에서 놀고 먹는다고 주장하는 구조와 같습니다. "여성은 창조적이지도 않고, 사고할 줄도 모르며, 두뇌도 없다"고 말하죠. "여성은 이류, 남성은 일류이며 여성은 남성의 부속품에 불과하다." 자연과 여성에 대한 이 두 가지 패러다임은 하나로 작동해요. 자본주의식 가부장제입니다.
돈을 벌어오는 이를 맹목적으로 떠받들고, 당연히 그 자리는 남성 권력이 독점하는 이념으로, 시스템으로 자리합니다. 그러는 사이 여성은 모든 인류가 해야 할 일을 도맡도록 강요받아왔어요. 가부장제 국가에서 경제 시스템이 굴러가도록 하기 위해 여성들은 가정에 구속되어 있어야 했죠. 그 과정에서 우리 할머니들은 대부분의 산업화 사회에서 잊힌 원리, 생명이 순환되고 창조되는 원리를 기억하고 간직할 수 있었습니다.
여성은 천성이 집안일에 잘 맞아서가 아니라, 그 일을 하라고 강요 받았기에 그 일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실은 매우 중요한 일을 해온 겁니다. 우리 삶을 돌보고 유지시키는 일이니까요. 여성성은 세상을 바르게 알아차리는 인식 능력입니다. 생태 농사를 짓는 농부가 화학 농사에 빠진 농부를 자연으로 되돌리도록 하는 선생님이 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죠.
<어크로스 페미니즘> 223~2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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