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에 발행된 신문에서 흑산도 근해 포경 실태를 마지막으로 보도한 것은 <매일신보> 1944년 1월 26일자였다. <매일신보>는 ‘반도(半島)에 고래떼 - 대흑산도에 개가(凱歌)’라는 제목을 달았다.
매일신보 갈무리
특히 신문은 "조선 근해의 최근 1년 동안의 포경어황은 총독부 수산과 보고에 의하면 그 회유 상태는 그다지 좋지 않다"라고 실토하고 있다. 한반도 근해에서 벌어진 일제에 의한 무차별적인 고래 학살은 일제 스스로 "(고래) 회유 상태가 좋지 않다"라고 시인할 정도였던 것이다.
일제 강점기, 포유류인 고래의 몸에 저장된 흑산바다를 비롯한 한반도 근해는 더 이상 새끼를 낳고 키우는 생명의 바다가 아니었다. 고래들에게 한반도 근해는 학살의 바다, 죽음의 바다였던 것이다. 그런 학살의 바다, 죽음의 바다에 어느 고래가 돌아왔겠는가.
이 신문은 "울산 근해 어장의 115두를 우두머리로 각 어장에도 평균 10두를 짧은 기간에 잡아서 어황의 활발함을 전하고 있는데 이는 모두 곧 배 안에서 처리되어 고기, 기름, 냉동간장(冷凍肝臟), 증골(蒸骨) 등 광범위로 남김없이 이용되어 조선포경업의 어황은 크게 기대된다"라 끝을 맺고 있다.
일제 강점기 신문 보도에서처럼 해방 직전까지 일제의 포경근거지로 중요하게 활용되었던 흑산도. 얼마나 많은 고래들이 흑산바다에서 일제에 의해 죽임 당했을까.
일본포경협회는 1926년부터 1944년까지 포경근거지별로 포획한 큰고래의 수를 기록한 <포경통계부>를 작성했다. 1926년부터 1944년까지 일제가 한반도에 설치한 4개 포경근거지(울산 장생포, 제주도 서귀포, 전남 흑산도, 황해도 대청도)에서 포획한 고래는 모두 3130마리. 이 가운데 858마리를 대흑산도 포경근거지에서 포획했다. 1926년부터 1944년까지 일제가 한반도 근해에서 포획한 고래의 1/4이 넘는 27.4%를 흑산도 근해에서 포획했던 것이다.
이 기간 동안 흑산도 근해에서 포획 당했다고 기록된 858마리의 고래 가운데 가장 많이 포획된 고래는 참고래로 무려 827마리였다. 다음으로 많은 고래는 돌고래(혹등고래)로 28마리가 이 기간 동안에 포획됐으며, 대왕고래도 3마리 포획되었다.
일본포경협회가 작성한 <포경통계부>와 신문 보도, 그리고 그 밖의 자료를 교차 분석해보았다. '대흑산도 포경근거지'가 설치된 1916년 12월 이후인 1917년부터 1934년까지 17년 동안 흑산도 근해에선 약 1095마리의 큰고래가 일제에 의해 죽임 당했다. 그리고 1935년부터 1944년까지 9년 동안 약 369마리의 큰고래가 죽임 당했다. 즉 1917년부터 1944년까지, 흑산도 근해에선 약 1464마리의 큰고래가 일제에 의해 학살당한 것이다. 이조차 이런저런 기록으로 남아있는 것을 확인한 것에 불과하다.
일제 강점기, 흑산바다를 비롯한 한반도 근해에선 학살당하는 고래들의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흑산바다에서만 최소한 1464개의 고래 가족이 학살당해 해체 당했다. 학살의 바다, 죽음의 바다로 변해버린 한반도 연근해에 고래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