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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창
우리 보금자리에 아이가 찾아온 뒤부터 시를 꾸준히 읽습니다. 아이가 어버이한테 들려주는 모든 말은 노래요, 어버이가 아이한테 들려줄 말도 언제나 노래라고 느껴요. 이러면서 시집을 손에 쥡니다.
아이가 우리 보금자리에 찾아온 첫무렵에는 그냥 숱한 시집을 읽었어요. 아이가 말에 귀를 열고 글에 눈을 뜰 즈음, 어버이가 스스로 시를 써서 들려주어야 하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이제는 아이하고 함께 시를 씁니다.
따로 등단이라든지 문학수업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만, 아이들하고 말놀이를 누립니다. 아이한테 새롭게 말을 한 마디 들려주고, 아이는 다시금 새롭게 노래를 부르며 돌려줍니다.
이 사람 저 사람 불러다 공평히 나눠 먹는 삶, 도란도란 둘러앉아 맛있게 먹는 밥을 통해 시인은 그가 바라는 세상 모습을 확연하게 그려낸다. 누구도 혼내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지식인의 시가 갖는 그릇된 것에 대한 풍자라기보다, 우리 민중의 판소리 가락에 묻어나오는 해학과 익살에 가깝다. (121쪽)
시를 쓰기도 하고 읽기도 하는 '아주머니'인 김해자 님이 엮은 <시의 눈, 벌레의 눈>(삶창 펴냄)은 문학비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말로는 문학비평입니다. 쉬운 말로 하자면 '시를 읽고 쓴 이야기'라 할 수 있을 테고요.
김해자 님은 시를 쓸 적에 아주머니다운 말씨로 부드럽거나 나긋나긋하게 이야기를 풀어내시곤 하는데, 막상 이녁도 비평이라는 이름으로 시집을 이야기하려니 말씨가 좀 딱딱하거나 어렵습니다. 그저 수수하게 아주머니스럽게 시를 읽고 이야기하면 한결 나을 텐데 싶기도 합니다.
이 시를 읽다 아주 조금 울었습니다. 그의 방 냉장고에 있는 말라비틀어진 갓김치 몇 조각과 젓갈이 보여서요. 그 방의 눅눅한 이불과 책과 어둠이 생각나서요. (146쪽)
생명이라는 말을 떠올릴 때 생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풀이라는 언어를 떠올릴 때 풀의 형상이 없을 수 없다. (237쪽)
시를 이야기하는 <시의 눈, 벌레의 눈>이라는 책이 다루는 시집은 '일하는 시'입니다. 그냥 시가 아닌 '일하는 시'란 '노동시'라고도 합니다. 일하는 자리에서 솟아나는 시요, 일하는 땀방울을 담은 시요, 일하는 보람을 드러내는 시요, 일하다가 아프거나 슬픈 마음을 밝히는 시입니다. 일하는 사람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씩씩하게 한 걸음 내딛는 몸짓을 그리는 시입니다.
시를 쓰는 사람은 모두 다를 테니, 언제나 다 다른 시가 태어납니다. 일하는 사람도 저마다 다른 일터에서 저마다 다른 일손을 잡을 테니, 늘 다른 일거리하고 일노래가 흐르겠지요.
그런데 김해자 님이 이녁 책에서 적기도 하듯이, 요즈음 시집에서는 땀내음이 옅기 일쑤입니다. 요즈음 시를 쓰는 분들은 스스로 땀을 흘려 삶을 지은 이야기를 덜 쓰거나 안 쓰곤 합니다. 머리로 말을 굴리거나 짜맞추는 문학만 으레 하지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