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학교 졸업사진명동학교 제17회 졸업사진 기념촬영(첫째줄 왼쪽 첫번째 문익환 목사, 둘째 줄 오른쪽 첫번째 윤동주)
사단법인 통일의 집
북간도 명동촌 어린이들문익환과 윤동주가 친구였다고 말하면 흔히 뜻밖이라는 표정들을 한다. 정색해서 부언해도 제법 큰 학교를 함께 다닌, 두세 발짝 떨어진 동창쯤으로 여기기 일쑤이다. 한 사람은 일제강점기의 청년이요, 한 사람은 1980년대의 재야인사이니 그렇게 안다 해도 어쩔 수 없긴 하다. 하지만 둘의 관계가 '성만 다른 혈육'이라고 해도 될 만큼 내밀한 것은 사실이었다. 어쩌면 태어나기 전부터 더불어 살도록 예정된 사람들처럼 말이다.
1925년 서울에서 출간된 작고 낡은 시집 한 권. 문익환은 김동환의 <국경의 밤>을 용정과 평양을 전전하던 학창시절에도 소지했고, 만주에서 김천(경북)까지 걸어서 월남할 때도 버리지 않았으며, 전쟁통에도 분실하지 않았다. 그 책을 왜 그토록 챙겼는지 자신도 한때는 망각했다가 동창 김정우의 말을 듣고서야 까닭을 알았다. 명동학교의 졸업 선물이었다.
명동학교는 북간도에 세워진 한국인 최초의 근대식 민족교육기관이였다. 저 옛 조선이 기울어갈 때 동학농민혁명이 실패하자 함경도의 네 가문이 두만강을 건너가 마을을 이루고 학교를 세웠다. 바로 그 마을에서 윤동주는 1917년에, 문익환은 1918년에 태어났다. 그리고 윤동주의 시에 나오는 그 유명한 '십자가'가 있는 '교회'에서 문익환의 아버지가 목사로, 윤동주의 할아버지가 장로 일을 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