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는 사진 합성을 의뢰하면서 개인정보를 덧붙였다.
피해자모임 페이스북 페이지
경찰 조사받고도 버젓이 교내 활동... 조사 불참 - 피해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됐나. "지난해 12월 말, 가해자가 지하철에서 휴대폰을 잃어버렸다. 그걸 주운 사람이 휴대폰을 돌려주기 위해 사진첩과 SNS에 들어갔는데 사진첩에 이상한 사진이 너무 많았던 거다. 가해자가 트위터로 합성을 의뢰한 기록이 남아있었는데, 거기에 사진 뿐 아니라 이름, 나이, 집 주소, 전화번호 등의 개인정보가 같이 있었다. 그걸 본 습득자가 카카오톡에서 피해자의 이름을 찾아 연락했다.
처음에는 터무니없는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해자에게 연락해보니 'SNS상에서 지인 합성사진을 보고 신고를 위해 저장했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 얘기를 듣고 사진이 존재하는 건 사실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직접 확인해보니 상황은 더 심각했다. 가해자는 트위터나 텀블러를 통해 적극적으로 합성을 의뢰했다. 피해자들의 개인정보도 그대로 노출했고, 입에 담을 수 없는 모욕적인 발언들을 덧붙였다."
- 이후 피해자들은 어떻게 대응했나."피해사실을 알게 된 피해자가 (피해를 입은) 다른 사람들에게 연락을 했다. 상황을 전달받고는 다들 당황했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했다. 밤새 고소장을 작성하고, 증거를 정리했다. 사진만 무려 60장이 나왔다. 다음날 바로 성동경찰서를 방문해 가해자를 고소했다."
- 가해자의 반응은 어땠나."휴대폰을 주운 사람과 피해자가 대화하는 걸 본 가해자가 연락을 시도한 적이 있다. 'OO아, 카톡 내용 대충 봤는데 지금 카톡 가능해?' 이후 가해자는 원격으로 휴대폰을 잠금 처리하고, 계정 비밀번호를 바꿨다. 가해자는 경찰 조사에서 '단순히 호기심에 그랬다'고 주장하고 있다."
21일 한겨레의 보도(관련 기사 :
'여성 지인 사진 음란물과 합성'…피해자 우는데 가해자는 멀쩡)에 따르면, 가해자는 2015년부터 지속적으로 음란물 합성을 의뢰했다. 피해자들이 '호기심'이나 '실수'라는 말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다. 한양대학교 인권센터에서 조사를 위해 가해자에게 연락을 했지만, 가해자는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출석을 거부했다.
경찰 조사 이후에도 교내 단체 모임에 매일같이 참여했던 것과는 상반되는 반응이다. 현재 가해자가 참석을 거부해 교내 징계절차는 진행되고 있지 않다. 한양대학교 측은 22일 통화에서 "가해자에게 일종의 소명 기회를 주는 것이지만, 지속적으로 거부할 경우에는 가해자의 출석 없이도 인권심의위원회나 징계위원회를 소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자극적인 언론보도,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가해' - 페이지를 만드는 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선 이유가 궁금하다."처음 언론보도가 나가고 여러 언론사에서 비슷한 기사를 쏟아냈다. 그러나 이런 기사들은 피해자들의 동의 없이 보도됐고, 심지어 사실 관계가 틀린 내용도 있었다. 어떤 기사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가 한양대 학생이라고 했는데, 실제로 피해자는 한양대생과 다른 학교 학생 각각 8명이다.
또 피해자와 가해자가 어떤 관계였는지를 눈치챌 수 있는 정보들도 들어가 있었다. 사건 이후 안 그래도 신상이 유포될까 걱정하고 있는 피해자들에게는 큰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서 직접 페이지를 만들었다.
이번 사건과 같은 온라인 성범죄에 대한 심각성을 알리고, 다른 피해자를 막고 싶은 마음도 있다. 이런 사건을 겪어보니 온라인 성범죄에 대한 처벌 방법과 관련법이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론화를 통해서 지인 합성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제기하고, 우리뿐 아니라 다른 피해자들을 위해서라도 제도 개선이 이루어지길 바라고 있다."
-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지인능욕'이라는 단어와 자극적 삽화를 사용하지 말라고 요청했는데 이유를 듣고 싶다."우선 '능욕'이라는 표현은 '여자를 강간하여 욕보임'이라는 뜻으로, 주로 이런 합성사진을 제작하는 가해자들이 사용하는 표현이다. 많은 기사에서 '지인 능욕, 지인 합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지인능욕'이라는 단어가 사건의 본질을 흐리면서 자극적인 면을 강조한다고 느꼈다.
현재 피해자 모임에서는 '능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지인 사진을 이용한 음란물 제작'이라고 이 사건을 부르고 있다. 또한 사건 자체가 자극적인 음란물 사진과 관련된 만큼, 보도에서 자극적 삽화를 사용하는 것은 피해자들에게 2차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
- 피해자들은 현재 어떤 상태인가."사건 이후 피해자들은 혹시라도 가해자가 보복으로 사진을 유포하지는 않을까, 신상정보가 유출되진 않을까 불안에 떨고 있다. 인터넷에 들어가서 댓글과 게시물들을 매일매일 확인한다.
피해자들은 각자 바쁜 일정 속에서도 시간을 쪼개 경찰과 학교, 언론과 계속 사건에 대해 논의하고 있고, 페이스북을 통한 공론화도 진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피해 사실과 사람들의 반응을 접하게 되고, 또다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린다. 피해자들 중 몇 명은 상담센터를 다니거나 병원에 다닐 정도로 일상 속에서 피해를 겪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