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도깨비> 스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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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래미 대학 합격했다고 한턱 쏜다던 친구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전화했다. 독감이란다. 요즘에는 독감 안 걸린 사람 찾기가 더 힘들다. 급격한 기온 차이 때문인지 미세먼지에 딸려오는 바이러스 때문인지 병원마다 독감환자로 북새통이다. 이래저래 약속이 취소되어 며칠을 집안에만 있으니 혼자 놀기에 달인인 나조차 슬그머니 기분이 다운된다. 찌푸린 하늘만큼 내 마음도 찌뿌둥해진다.
처진 기분을 '업'시켜보려고 강아지들과 이방 저방 달리기도 해보고 유튜브에서 줌마댄스인지, 줌바댄스인지 동영상을 틀어놓고 따라해 본다. 이거 효과가 있다. 이름도 요상하게 아줌마를 연상시키는 줌마댄스. 라틴댄스와 피트니스 동작을 접목했다는 이 댄스는 5분만 해도 등줄기가 후끈해지며 땀이 난다. 웃기기도하고 재미도 있고 무엇보다도 살짝 기분 전환이 된다.
미세먼지는 '먼지'라는 이름으로 날아와 어떤 사람에게는 우울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한숨이 되며 또 어떤 이에게는 독감이 된다. 지나치는 사람의 눈빛 하나에도 신경이 쓰이는 나에게 그것은 '새로운 미션'이다.
'날씨가 이래서' 짜증이 난다는 사춘기 아들에게는 맵고 단 요리로 기분을 달래줘야 하고, '날씨가 이래서' 길에 다니는 사람도 없고, 그래서 장사가 안 된다고 한숨 쉬는 남편에게는 이럴 때가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라고 부추긴다. 당장 나가야 하는 돈이 정해져 있는데 태평한 소리한다고 구박을 한다.
내가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일 앞에 잠시 할 말을 잃다가 "내가 더 줄여볼게. 아들들! 오늘부터 밥 한 그릇씩만 먹어. 긴축재정이야" 내가 소리치자 각자 방에 흩어져있던 아이들이 큰소리로 "네" 답한다. 분위기가 좀 누그러졌다. '엄마'라는 건 365일, 24시간 집안일은 물론 식구들의 기분까지 돌봐야 하는 극한 직업이다.
포털에서 검색해보면 미세먼지의 원인이나 '생활 속 미세먼지를 줄이는 작은 실천'들이 깨알처럼 올라와있다. 이 중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무엇일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일에서부터 일회용품 사용을 줄여 환경을 살리는 일까지 어렵지 않게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을 숙지해본다(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한때 몰린 고등어는 얼마나 억울했을까? 온몸을 태워 단백질과 DHC를 공급해줬더니 이런 누명까지 쓰고. 안타깝다).
환기를 못하는 일. 마스크를 써야하는 일. 외출을 자제하는 일. 물걸레질을 더 자주해야 하는 일. 장사를 접어야 하는 일. 마음이 우울해 지는 일. 호흡기 감염에 걸리는 일. 먼지 하나에도 극복해야 하는 일이 너무도 많다.
있을 때는 그 소중함을 모르는 공기. 미세먼지는, 평소에는 아무도 소중히 생각하지 않지만, 없으면 모두를 소멸시켜버리는 공기의 소중함을 깨닫게 한다. 이런 공기처럼 문득 '공기 같은 존재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너무 가까이, 너무 흔해서, 너무 당연해서, 함부로 대하거나 놓치고 있는 소중한 뭔가가 있는 건 아닌지. 소중한 것을 소중한 것으로 알지 못하면 결국 놓쳐버리고 후회하게 되니까. 깨끗한 공기의 소중함처럼 내 주변의 공기 같은 존재들의 소중함도 다시금 생각해 본다.
이번주부터 한파와 함께 강한 바람으로 미세먼지가 사라진다고 한다. 춥더라도 온 집안의 문을 활짝 열고 공기를 바꾸고 싶다. 그리고 소중한 이들에게 다짜고짜 밑도 끝도 없는 문자발송을 해야겠다.
"붕어빵에 커피 한잔 하자. 우리 집에 놀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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