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의선 육로로 도착한 현송월 단장평창 동계올림픽 북측 예술단 사전점검단을 이끄는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이 21일 오전 경의선 육로를 통해 남북출입사무소에 도착한 뒤 이상민 정부합동지원단 국장과 악수하고 있다.
통일부제공
개성공단 문이 닫힌 지 2년. 그 동안 기업들은 여러 차례 방북을 신청했으나 단 한 차례도 개성공단에 가지 못했다. 공장에 두고 온 제품과 자재가 어떤 상태로 남아있는지 한번만이라도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절절하다.
이런 상황에서 평창동계올림픽이란 기회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지난 17일 서울 영등포구 개성공단기업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신 회장은 "우리나라가 올림픽과 참 인연이 많은 것 같다"라며 옅은 미소를 내보였다.
"이제 70년 굴레 벗어던져야"
신 회장은 대뜸 "굴렁쇠 소년, 그 정도의 나이이신가요?"라며 기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굴렁쇠 소년'이 잠실주경기장에 굴렁쇠를 굴리며 등장하던 모습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남아 있다. 기자가 "딱 1988년생입니다"라고 답하자, 신 회장은 "아주 중요할 때 태어났네요"라며 말을 이어갔다.
"당시 노태우 정부였거든요. 군사정권이라고 해서 데모도 많이 했을 땐데, 그 정부에서 올림픽 전에 전격적으로 북방정책을 시행했어요. 직전 하계올림픽이 1984년 LA올림픽이었고, 그 전이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이었잖아요? 둘 다 반쪽짜리 올림픽이 되고 말았죠. 한창 냉전시대일 때라 동서가 갈라져 있었기 때문에, '너네가 올림픽 하면 우리는 안 가'라는 식이었죠."
의도가 어땠든 당시 노태우 정부는 올림픽에 사활을 걸었고, '반쪽 올림픽' 딱지가 붙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노태우 대통령이 직접 "참가하는 모든 국가 선수와 임원의 안전을 보장한다"라고 말할 정도로 소련 등 동구권 국가의 참여를 호소했다. 신 회장이 말한 북방정책은 그런 맥락에서 시작됐다.
"우리가 한강의 기적을 이야기했지만, 서울올림픽 당시 국민소득이라고 해봐야 2500달러였습니다. 근데 북방정책과 올림픽을 계기로 30년 만에 3만달러를 바라보는 시대가 됐잖아요. 그 동안 정권이 바뀌고 최근 개성공단까지 폐쇄돼 버렸지만 어쨌든 서울올림픽이 남북관계 개선과 그에 따른 경제발전에 기폭제가 된 겁니다."신 회장은 "개성공단은 물론 남북관계가 다 막힌 상태에서 30년 만에 다시 올림픽을 치르게 됐다"라며 "서울올림픽을 거울삼아 평창올림픽을 다시 점프할 수 있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지난 10년 동안, 우리는 북한이란 변수를 전혀 활용하지 못했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