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심부름으로 아빠가 일하는 아파트에 간 적이 있었다. 조그만 담뱃갑 같은 곳에서 아빠가 웃는 듯 머쓱한 표정으로 나오는데, 왜 눈물이 왈칵 나려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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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며칠 전, 아빠와 같은 B조 아저씨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무슨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전혀 궁금하지 않았지만, 전화기 너머로 아빠의 큰 목소리가 들려와 들을 수밖에 없었다. 수화기 속 아빠는 조금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우리가 뭐냐? 그냥 집 지키는 개지."작은 탄식조차 나오지 않았다. 못 들은 척하려 했지만, 계속해서 그 말이 머리에 맴돌았다. '그냥 집 지키는 개지'. 오랜 시간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며 사셨단 말인가. 정말 그랬던 걸까. 진짜 진짜 그렇게는 생각 안 하셨으면 좋겠는데.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10여 년 전, 머쓱하게 담뱃갑 같은, 어떻게 보면 네모 박스와도 같은 '초소'에서 걸어 나오던 아빠의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아빠는 분명 조금 어색했던 거다. 딸이 본인의 '일터'에 온 게. 사실 그런 아빠는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는데. 그냥 낯선 공간에서의 아빠가 조금 어색해 보여 나도 멋쩍게 웃었던 것뿐인데.
내가 집에 돌아가고 나서 아빠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생각할 틈도 겨를도 없이 택배 상자를 지키셨을까 아니면 불이 켜지고 또 꺼지는 창문들을 보고 있었을까. 돌아오는 버스에서 나는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기억도 나지 않는다.
오늘은 스스슥, 여전히 끌리는 아빠의 두 발은 어쩌지를 못한다.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아빠의 컨디션을 읽어본다.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더 커지는 발소리는 늘 바삐 움직이고 뛰어다니는 아빠의 부지런한 성격 때문일 거다. 젊을 때는 지금보단 빨랐을 테고, 보폭도 컸을 텐데.
이제는 몸이 머리를 따르지 못하니 마음만 급해 몸이 먼저 나가는 걸 안다. 샤샤샥, 스스슥 발소리를 내면 스케이트를 탄 듯 스스로 빨리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지니까. 걸음도 내 머릿속 속도를 잘 따라오고 있구나, 하고 안심하는 걸 테지.
어느 날엔, 보폭을 맞추고 같은 속도로 같이 걸을 날도 오겠지. 따뜻하고 제일 안락한 우리 집에서 함께 불을 켜고 하루를 살아내고 다시 불을 끄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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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그냥 집 지키는 개"라는 아버지, 정말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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