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BBC 기자의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속칭 '문빠') 때문에 기사쓰기가 두렵다는 <조선비즈> 박정엽 기자의 질문은, 그야말로 기자로서의 기본적 자질을 의심케 하는 질문이었다. 물론 대통령을 향한 기자의 질문 내용은 경계를 넘어 다양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
하지만 시청자의 입장에서 볼 때 해당 질문은, 해당 기자가 기자로서의 기본적 직업윤리를 인식조차 하고 있는 것인지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이었다. 해당 기자의 이름을 검색해보니 그는 문재인 대통령 방중 당시 이른바 '혼밥 프레임'을 퍼뜨리고, 문 대통령의 영화 1987 관람을 두고 "대통령이 정치색 짙은 영화를 관람했다며" 비난한 당사자였다.
이후 예상대로 해당 기자에 대한 누리꾼들의 성토가 인터넷과 SNS상에서 이어졌다. 아마 이는 말과 글을 '권력'의 수단으로 유지하려는 세력(=언론권력)과 소통의 도구로만 그 역할을 한정하려는 세력(=촛불시민들)의 충돌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해당 장면은 촛불시대의 상징적 장면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민생·복지·빈곤층·노동문제에 대한 질문 거의 없어한편, 그 많은 기자들의 질문 중 민생이나 복지, 빈곤층·노동문제에 대한 질문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거의 대부분의 질문이 정치·안보 분야에 집중되었을 뿐이다. 이 역시 참으로 기이한 현상이었다.
이번 대통령 기자회견문에 민생 관련 내용이 압도적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점을 상기해보면 더욱 그러하다. 이는 사회적 약자나 소외 계층의 경우, 제도 언론 기자들의 평소 관심사에서 제외되어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전 세계에서 기자 출신 정치인이 가장 많은 우리 사회의 모습이 과연 이와 무관한 것일까. 또 현재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적폐청산 현안에 대한 질문 역시 전무했다. 시청자들로선 현재 한국의 제도 언론 기자들이 과연 자신들을 대변하고 있는지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처럼 종전과 달리 혁신적인 형식을 보여준 대통령 신년기자회견장은, 도리어 국내 주류언론 기자들의 직업 윤리 인식과 학습 수준, 세계관, 현실 인식을 스스로 폭로(?)하는 장이 되었다. 해당 기자회견장의 국내 기자들의 모습에선, 진실을 향한 집요한 의문도, 현안에 대해 깊이 있는 공부를 한 흔적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게다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나 감각 역시 전혀 없었다. 고 리영희 선생이 자서전 <대화>에서 1960년대 <조선일보>기자 시절, 도서관을 다니며 공부한 바탕 위에서 정부기관을 취재해 공무원들을 놀라게 할 정도였다고 고백한 사실이 떠오를 지경이었다. 이명박, 박근혜의 역사상 유례없는 국정농단은 이런 청와대 기자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이런 상태라면 조만간 한국 주류 언론 기자들은 촛불시대에 가장 낙후된 집단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치열한 언론고시 경쟁을 뚫고 합격한 국내 주류언론의 기자들은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일까? 이에 대해 강명구 서울대 교수는 2006년에 발표한 한 논문(「언론권력과 훈민적 공론장」,『역사비평』통권 77호, 2006)에서 한국 언론의 뿌리 깊은 훈민적·권위적 태도, 기자 집단의 권력집단화, 언론 스스로의 정치화가 '언론권력'의 출현 배경이라 지적하고,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언론의 권력화 양상을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우선 기자 스스로 정치권력에 진출한 경우가 있었다. 강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1965년부터 1993년까지 171명의 기자가 정치권력으로 진출했던바, 그중 주요 일간지 출신이 77.2%였다고 한다.
이와 함께 집단적 수준에서 기자사회가 기존의 권력 네트워크와 긴밀하게 연결되는 흐름이 있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선 지난해 폭로된 장충기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의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 내용을 단적인 사례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장충기 차장의 문자메시지 속에는 언론인들과 삼성이 서로 취업청탁을 비롯한 각종 청탁을 지속해온 정황과, 언론이 삼성과 공모해 삼성에 유리한 방향으로 기사를 써온 '흑역사'가 날 것 그대로 들어 있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해당 사실이 한 매체에 의해 폭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이에 연루된 언론(인)들의 반성과 처벌은커녕, 주류언론들은 아예 해당 사실을 보도조차 하지 않는 식으로 대응한 점이다. 국내 주류언론에 대한 대중적 불신이 커질 수밖에 없고, 기자 사회가 집단적 퇴행을 겪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강명구 교수는 2006년의 논문에서 이렇게 썼다.
"비유를 들어 말하면, 중계석에서 축구 경기를 중계해야 할 기자들이, 선수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경기장 안에 들어가 스스로 경기를 하는 양상이다. 축구선수로 직업을 바꿨다면 문제가 덜할 텐데, 선수로 뛰면서 중계도 하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해졌던 것이다. 이것은 보수언론이든 진보언론이든 모두 같은 양상이었다."(위의 글, 77쪽)여기서 강 교수는 기자들이 '선수'로 뛰면서 '중계'도 하는 양상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선수'로 뛰고 있는 기자들이 대중 앞에선 '중계자'로 자처하며 대중을 기만하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문제는 언론의 '정치적 속성'이 아니라, 대중을 기만하려 드는 주류 언론인들의 태도와 실체에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주류 언론(인)이 이런 자기 기만에 너무 익숙해져 새 시대에 적응하기 어려울 정도의 '문화 지체'에 빠져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촛불시대의 대중은, 그동안의 '학습 효과'로 인해 그러한 '기만'을 이제 쉽게 간파해낼 수 있다. <조선비즈> 박정엽 기자의 질문이 '우문(愚問)'으로 조롱받고 있는 현상이 이를 상징하고 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3
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시민.
사실에 충실하되, 반역적인 글쓰기.
불여세합(不與世合)을 두려워하지 않기.
부단히 읽고 쓰고 생각하기.
내 삶 속에 있는 우리 시대 이야기.
공유하기
청와대 기자단의 수준 폭로된 문 대통령 신년기자회견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