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서원 뜰에서 본 강 건너 시사단. 정조의 퇴계 이황과 도산서원에 대한 애정이 깃든 유적이다. 정조의 명으로 별과(특별한 날이나 행사 등을 기념해 치렀던 과거시험)가 치러진 곳이다. 당시 8천명이 시험을 봤다고 한다.
김현자
서원의 시작과 목적은 '선현을 제향하고 그들의 학문과 언행을 배우고 수신하고자'이다. 그런데 이와 전혀 다르게 특정 문중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무분별하게 건립되기도 했다. 과정에 특별한 학문성과나 나라에 공적이 없는 인물이 그럴싸하게 포장되는 등 부정이 끊이지 않았다.
또한 정치계와 경제계에 관여하거나, 붕당의 근거지가 되기도 했다. 양민들이 군역을 피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했다. 서원들의 이런 부정을 끊은 것은 고종 8년(1871년)에 단행된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 그로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국가가 인정, 노비 등 재정지원을 한)인 소수서원을 포함한 47개의 서원만 남아 현재에 이른다.
2015년, 우리는 한국서원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데다, 일반인들이 많이 찾는 소수서원과 도산서원, 병산서원 등 유서 깊은 9개 서원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 했으나 과정상의 문제로 무산되고 말았다고 한다. 이 책은 이들 9개 서원을 중심으로 서원을 길잡이 한다.
"사물의 위치는 한 번 곧게 펴면 한번 굽혀야 하는 법이다. 공자도 "자벌레가 몸을 굽히는 것은 장차 몸을 펴기 위함이다"라고 말했다. 굽히기만 하고 펴지 않는다면 고유함을 유지할 수 없고, 펴기만 하고 굽히지 않는다면 움직임을 이어갈 수 없다. 학문을 하는데도 긴장과 이완을 조화롭게 해야 바라는 성과를 거둘 수 있다.
(…) 쉼을 뜻하는 한자 단어로 휴식이 있다. 休(휴)는 일하는 것을 그만두고 나무에 기대어 쉬는 인간의 모습을 나타낸 글자이다. 여기서 木(목)은 단순히 한 나무를 가리키기보다 산수자연을 의미하는 것이다. '휴'라는 글자 하나에도 이처럼 자연과 함께 하는 동양 사람들의 쉼의 철학이 투영돼 있다. 한편 식(息)은 들숨과 날숨 사이의 공백을 가리키며, 한숨 놓았다고 하는 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또한 '휴게'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게(憩)는 설(舌)과 식(食)의 합자로, 혀로써 음식을 맛보기도 하고 남과 이야기를 나누며 쉰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를 비교해 보면 휴(休)는 정적 측면이 강한 개념임을 알 수 있다."-(129~131)
책의 구성이 돋보이는 것은 9개 서원을 각각 설명하지 않고, 서원의 특징인 공간으로 구분해 들려준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제2장의 주제는 '진입공간'으로 외삼문과 내삼문, 그리고 홍살문 등이 이에 속한다. 책은 외삼문과 내삼문 등에 대해 전체적으로 설명한 다음 병산서원 복례문이나 도동서원 환주문, 소수서원 지도문…, 이처럼 각 서원들의 문을 설명해준다.
제3장은 강학공간, 제4장은 제향공간. 역시 2장처럼 각각 전체적으로 설명한 다음 각 서원별로 다시 설명한다. 게다가 지식적 혹은 사전적 설명에 치우치지 않고 첫 번째 인용처럼 건물 특징과 관련 일화를 적절하게 섞어 설명한다. 그래서 서원이 훨씬 쉽게 이해되고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