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 조식 선생을 기리는 용암서원 앞에는 1555년 조선 명종이 내린 단성 현감직을 사직하며 뇌룡정에서 쓴 상소문(乙卯辭職疏?을묘사직소)이 새겨져 있다.
김종신
서원 앞에는 선생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옆에는 그가 1555년 조선 명종이 내린 단성 현감직을 사직하며 뇌룡정에서 쓴 상소문(乙卯辭職疏, 을묘사직소)이 새겨져 있다.
명종은 "자전(慈殿, 명종의 어머니 문정왕후)께서 생각이 깊으시기는 하나 깊숙한 궁중의 한 과부에 지나지 않고, 전하께서는 어리시어 다만 선왕의 한 외로운 아드님이실 뿐이니"라는 구절 등에 격분했다. 임금 자신을 고아에 불과하고 어머니인 문정왕후를 구중궁궐의 한 과부라는 내용에 벌을 주려고 했다. 다행히 '언로를 막을 수 없다'라는 신하들의 만류에 명종은 벌 줄 수 없었다.
죽은 듯 있다가도 용처럼 나타나라"선무랑 단성 현감에 새로 제수된 조식(曺植)은 진실로 황공하여 머리를 조아리며 주상 전하께 소(疏)를 올립니다"로 시작하는 상소문을 천천히 읽었다. 아래 구절에서 가슴이 뛴다.
"전하의 나랏일이 이미 그릇되었고 나라의 근본이 이미 망했으며 하늘의 뜻은 이미 떠나버렸고 민심도 이미 돌아섰습니다. 비유하자면, 백 년 동안 벌레가 그 속을 갉아먹어 진액이 이미 말라버린 큰 나무가 있는데, 회오리 바람과 사나운 비가 어느 때에 닥쳐올지 전혀 알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이 지경에 이른 지가 오랩니다." 당시의 정세를 파악한 선생은 "전하께서는 사람을 쓰는 근본으로 삼으셔서, 왕도(王道)의 법을 세우십시오. 왕도의 법이 왕도의 법답지 않으면 나라가 나라답게 되지 못합니다"라며 왕으로서 왕답게 살라는 당부로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