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을 업고 슬픈 눈빛으로 웃고 있는 네팔 소녀
송성영
맑은 아이들의 서글픈 미소가 잊히지 않는 밤저녁 식사를 마친 돌카 가족 또한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신인 영화배우를 뽑는 프로그램이다. 쌍케 말로는 인도에서도 인기가 높은 프로그램이라 한다. 프로그램 구성이 한국에서 한창 유행인 신인가수 뽑는 방식하고 흡사하다.
신인 배우 응모자들을 소개하는 짧은 영상이 나오고 응모자들은 저마다의 연기를 선보인다. 무대 앞에 나란히 앉아 있는 유명 배우와 영화감독으로 보이는 심사위원들이 합격 여부를 가린다. 심사위원 세 사람 중에 두 사람이 찬성하면 합격이다. 합격한 사람은 합격증을 가지고 무대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과 부둥켜안고 감격의 기쁨을 누린다.
쌍케와 돌카는 서로 힌디어를 주고 받아가며 신나게 웃고 있다. 뭐 때문에 그리 신나게 웃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내내 침묵하고 있던 내가 원숭이 몸짓을 보이며 말했다.
"나는 당신들이 힌디어로 대화를 나누면 원숭이가 된다."둘이 배꼽 잡고 웃어가며 내게 쉬운 영어로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 준다. 하지만 두 사람의 영어가 영 머릿속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갑자기 진공 상태에 빠진 듯 멍해진다. 두 사람이 다정한 미소로 내게 뭐라 설명하고 있지만 그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그저 웃기만 했다.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누워 있는 내 몸이 마비되어 가고 있었다. 고산증을 앓는 사람처럼 숨이 가빠왔다. 눈을 뜨지도 감지도 못하는 상태, 마치 어떤 기운에 씌운 듯 무감각한 상태가 되어가고 있었다. 긴 테이블 반대편에서 잠들어 있는 쌍케의 수면 방해를 염려해 어금니를 깨물어 가며 몸을 일으키려 안간힘을 썼다. 그동안 잘 견뎌왔던 다친 무릎이 굽혀지지 않는다. 입에서 '으으으' 하고 신음이 흘러나왔다.
기다시피 해서 방문 앞으로 다가가 겨우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왔다. 달빛이 밝다. 보름달이다. 멀리 히말라야 설산이 희끄무레 보일 정도로 훤하다. 저만치 스톡마을 쪽에서 허공을 향해 우우, 하고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저 스톡마을을 감싸고 있는 돌산에 늑대가 살고 있다고 하니 어쩌면 늑대 울음소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지친 몸뚱어리처럼 늑대의 울음소리치고는 매가리가 없다. 길 잃은 개들이 울부짖는 소리 같기도 하다. 가끔 마을로 내려와 개들을 물어간다는 늑대들이 저 산에 진짜로 있기나 한 것일까. 야생성을 잃어버린 늑대의 울음소리는 사람의 손에 길든 개 짖는 소리나 다름없다. 야생성을 잃어버린 늑대의 울부짖는 소리는 기세 넘치는 우렁찬 소리를 낼 수 없다. 고통스러운 소리를 낼 뿐이다. 저 매가리 없이 내지르는 고통스러운 늑대의 소리는 인간성을 상실한 사람들의 공허한 웃음소리나 다름없다.
저 매가리 없는 소리가 늑대의 소리인지 개의 소리인지를 판가름하겠노라 귀 기울이고 있는데 어디선가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네팔 소년 뒤뉘시네 움막이다. 세상에 나온 지 10개월 된 뒤뉘시 여동생이다. 저 아이도 언젠가는 힘든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울음을 삭여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힘든 일을 마치고 움막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어린 동생을 업고 사진기 앞에서 웃어주었던 네팔 아이처럼.
착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은 험한 세상에 상처받고도 탓하지 않는다. 그 상처를 껴안고 슬픈 눈으로 미소짓고 살아가기에 슬프다. 포대기를 둘러 동생을 업고 있던 네팔 소녀가 그랬다. 웃고 있었지만 눈빛에 슬픔이 배어 있었다. 그 얼굴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세상에 나 아닌 것이 없다지만 움막집에서 살아가면서 힘든 일을 해야만 하는 네팔 아이들의 아픔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 아이들의 속울음을 알지 못한다. 환한 달빛에 희끄무레 드러난 설산처럼 눈앞이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늑대처럼 큰 소리로 울부짖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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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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