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기사는 늘 해오던 대로 흑인을 위협했을 것이다.
웅진주니어
"거기, 자리 비키라잖소!"버스 기사의 고함 소리에 화들짝 놀라 로자는 고개를 들었다. 새로 탑승한 백인 손님이 앉을 자리가 없자, 기사가 앞장서 좌석 정리를 하고 있었다. 이미 건너편 공용 좌석에 있던 흑인 둘은 뒤편으로 몸을 뺐고, 옆에 앉은 남자도 괜히 소란 피우고 싶지 않다며 엉덩이를 들었다. 로자는 그 남자가 지나갈 수 있도록 공간을 내어준 뒤, 버스 기사 제임스 블레이크를 흘끗 쳐다보며 도로 앉았다.
"로자 용감하네. 나는 저번에 울진 놀러 갈 때 기사 아저씨가 과자 먹지 말라고 해서 참았는데." 무서운 버스 기사 그림을 보고 지환이가 1학기 현장체험학습을 떠올렸다. 선생님에게 매우 친절했던 관광버스 기사 아저씨는 바닥에 과자 부스러기가 떨어지는 게 싫어 간식을 못 먹게 했다. 덜렁대다 흘리면 시트 끈적끈적 해진다고 음료수도 못 마시게 하길래, 따져서 물은 허용하게끔 합의를 보았다.
버스 구석구석 스며있는 시큰한 막걸리 냄새와 틈새에 끼어 있는 마른 오징어포를 보며 화가 나 머리 가죽이 뜨끈뜨끈 해졌다. 어른들에게는 술판의 공간이, 어린이에게 금욕의 성전으로 강요되었다. 차별은 현재 진행형이었다.
"거, 순순히 일어나쇼!""왜 우리가 일어나야 하는 거죠?""경찰을 불러야겠군!""마음대로 하세요."로자는 침착하고 힘 있는 말투로 항의했다. 옳지 않은 일에는 절대로 굽히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비쳤다. 버스 앞쪽과 뒤쪽에서 서로 다른 웅성거림이 퍼졌다. 피부가 하얀 사람들은 "체포해요.", "버스에서 끌어내요"라고 했고 반대편에서는 "저기는 공동 좌석이잖아. 저 부인도 앉을 권리가 있다고"라며 수군거렸다. 로자는 그대로 앉은 채 경찰을 기다리며 한 해 전인 1954년 미연방 대법원이 내린 '브라운 판결'을 되뇌었다. 공립학교에서의 인종분리가 '본질적으로 불평등하다'는 내용이었다.
로자는 자신이 지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백인이 먼저 지나가도록 길을 비켜주는 것에 지쳤고, 다른 테이블에서 점심을 먹어야 하는 것에 지쳤으며, 유색인 전용 출입구와 발코니 식수대 전용택시 모두에 지쳤다. '백인 입구'라고 적힌 팻말이 상점거리에 선명했다.
"흑인이라고 따돌림당하는 것 같아요. 근데 왜 흑인을 유색인이라고 불러요?""우리도 유색인이에요. 있을 유, 빛 색, 사람 인. 피부가 희지 않고 색이 섞이면 다 유색인이에요."말을 꺼낸 나영이는 대단히 충격받은 듯했다. 아이들은 핍박받는 로자를 가엾게 여겼지만, 한편으로는 이건 어디까지나 옛날 사건이고 흑인에게 국한된 문제라는 일종의 안도감을 누리고 있었다. 그런데 피부가 도화지처럼 하얄 수 없는 자신들도 유색인으로 분류된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움과 분노를 느꼈다. 로자가 탔던 버스 안처럼 자잘한 탄식이 흘러나왔다.
"백인들이 잘못했네.""나는 그냥 한국에 살래."얼른 다음 페이지를 넘겨 혼란을 잠재웠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이 노란 버스에 올라탔다. 그는 성큼성큼 로자에게 다가갔다. 메시지는 간결하고 위협적이었다.
"아줌마, 자리 좀 비키시지?""싫습니다."평등하지 않은 세상이 지긋지긋했던 로자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는 소신을 지키고, 몽고메리 시 조례 6장 11절 '분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체포되었다. 재판이 사건 나흘 뒤인 1955년 12월 5일로 잡혔다. 로자 체포 소식을 접한 여성 정치 위원회(Women's Political Council) 회원들이 움직였다. 그들은 로자를 구하기 위해 포스터 3만 5천 장을 찍어 유색인에게 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