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흥순 I '우리를 갈라놓은 것들' 43분 영화 스틸 2017
임흥순
전태일 열사가 1970년 노동자 선언을 한 이후, 거의 50년 만에 노동문제를 주제로 한 세계적인 수준의 작가가 한국 화단에 출현했다는 것은 늦었지만 반가운 일이다. 전태일은 당시 참혹한 노동 환경에서 참으로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이었다면, 임흥순 작가도 그에 못지않게 한국 근현대사를 열심히 탐구하는 예술가라는 인상을 준다.
1970년에 시작한 한국의 노동운동은 그마저도 남성 위주였다. 그러나 1976년부터 동일방직노조 등 여성노동운동이 나오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임흥순 작가는 특히 여성노동자에 주목하고 있다. 그들이 바로 작가의 가족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40년간 봉제공장에서 시다(보조원)였고 여동생은 밥 먹기도 편치 않은 백화점 여러 매장에서 노동자로 일했다.
임흥순 작가는 영화를 찍을 때 이런 여성노동자와 인터뷰한 내용을 원자료로 삼는다. 그들이 체험한 사연 많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작품을 구상한다. 여성의 입장을 예민하게 감지해 탁월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거기엔 시대정신인 '여성주의'도 담겨 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사회문제를 단지 고발하거나 비판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는 오히려 관객에게 노동이란 무엇이고 내가 입은 옷을 누가 만든 것이며 어떤 유통과정을 통해서 들어왔는지, 인간의 존엄이 뭔지 등을 곰곰이 생각하고 고민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임흥순 작가는 적극적으로 '경청의 미학'을 실천하고 있다. 인터뷰하면서 갑자기 머리에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작품에 활용하기도 한다. 혹은 그들이 미처 못한 말이나 안한 이야기마저도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작품에 반영한다. 그런 면에서 그의 영화는 '개념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일에 대한 철학적 빈곤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번에 주인공은 여성노동자가 아니라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은 네 할머니다. 이들은 목숨 걸고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전달했고, 경찰의 도민살해에 격분해 제주 4.3항쟁에 참가했고, 실종된 가족을 찾기 위해 지리산에 올랐다가 '빨치산'이 되었고,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의 비참함을 목격한 산 증인이었다.
이들은 바로 임흥순 작가의 또 다른 어머니이기도 하다. 작가의 어머니는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도 회사에서 가불을 하거나 남에게 돈을 빌려서 아들이 하고픈 미술을 하도록 적극 밀어주었단다. 작가는 이에 대해 미안함이 컸고, 그걸 가족적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 보답하고자 했다고 털어놓았다.
임흥순 예술영화의 차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