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포 해변의 소나무와 연인들연인들이 월포해변을 거닐고 있다.
정승화
훌쩍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이들에게 기차는 해방구이다. 구겨진 종잇장처럼 그렇게 기차에 몸을 실으면 끝없는 창공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홀연한 해방감. 손끝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은 이의 탈출을 돕는데 기차만한 것이 어디 있으랴.
밤새 술을 마시고 어둠속으로 기차를 달려 새벽 장엄한 일출을 볼 수 있는 곳. 서울의 광화문에서 정동쪽에 있는 나루터라는 뜻에서 이름 붙여졌다는 강릉의 정동진은 그래서인지 사연을 가진 이들이 밤늦게 찾는 관광 일번지이다.
홀로 오기도 하고 함께 오기도 하는 곳. 그는 외로워서 오고, 저들은 일출을 보며 새로운 미래를 약속하기 위해 온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정동진의 일출은 이방인들에게 그들만의 의미가 있는 붉은 약속, 또는 설렘의 장소로 각인돼 있다.
정동진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게 간이역인 정동진역이다. 드라마의 배경으로도 널리 알려진 정동진역은 젊은이들이 세상을 향해 종 주먹질 할 때나 그들의 낭만을 이야기할 때 어깨에 멘 기타와 함께 쏟아져 나오는 생의 배출구이다.
역 앞의 소나무는 1994년 그해 최고의 인기 TV 드라마 '모래시계'를 통해 고현정 소나무로 알려진 나무이기도 하다. 모래사장 위의 철로, 그 곁에 끝없이 이어진 금빛모래 해수욕장, 그리고 출렁이는 바다. 정동진을 만드는 것은 하나가 아니라 마치 많은 배우들이 모여 한편의 작품이 만들어지는 영화처럼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영화세트 같다.
정동진이 일출이라면 예로부터 월출이 아름다운 고장이 있다. 해가 지고 달이 뜨고, 삶이 있고 죽음이 있는 우주의 이치를 말해주듯 일출과 월출의 장엄함을 모두 즐길 수 있는 곳, 제2의 정동진을 꿈꾸는 포항의 월포(月浦), 파도의 세레나데가 아름다운 곳을 찾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