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 동상의 문구.‘프랑스 황제 근위대는 죽을지언정 결단코 항복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
노시경
동상 전면에는 짧은 글이 남아 있었다. 캉브론 장군의 이름을 적어놓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읽어보았더니 캉브론 장군이 워털루의 전장에서 남긴 유명한 말이었다.
"프랑스 황제 근위대는 죽을지언정 결단코 항복하지 않는다.(La garde meurt mais ne se rend pas.)"
프랑스 근위대를 포위하며 항복하라고 외친 영국군에게 캉브론 장군이 맨 앞에 나서서 결연하게 응답한 말이었다.
캉브론의 이 말은 당시 프랑스 국민들에게 전해져서 큰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정작 캉브론은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을 했다고 한다. 그 당시 유럽에도 가짜 뉴스가 널리 퍼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캉브론이 이 말을 부인한 지 얼마 후에 또 한번의 반전이 일어났다. 그가 영국군에게 한 대답은 그게 아니라 다른 말이라는 이야기가 파리에 널리 퍼졌고 국민들에게 더 깊은 인상을 안겨 주었다. 그는 "그대의 항복 요구에 대한 나의 답변은 다섯 글자다. '엿 먹어라(MERDE)'"라고 소리 질렀다고 한다.
이 캉브론의 한마디에 대해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Victor Hugo)는 "이 말은 프랑스 말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말"이라고 격찬하였다고 한다. 한마디로 프랑스 전국민의 지지를 받았던 것이다. 유럽을 호령하다가 졸지에 패전국이 되어버린 프랑스인들의 자존심을 살려주었던 한마디였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민족이나 이민족과의 전쟁에 결사항전한 위인들에 대한 사랑은 남다른 것 같다.
캉브론과 그의 근위대 병사들은 영국군에게 욕을 해가며 결연히 항전했기 때문에 모두 전멸당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예상 밖으로 그들은 모두 포로가 되었다가 풀려났다. 명성이 자자한 프랑스 전사들을 영국군도 인정해 주었던 것이다. 캉브론은 이 워털루 전투가 끝난 뒤에도 18년을 더 살다가 사망했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다가 살아난 캉브론은 고향 낭트에 동상으로 남아 오늘도 낭트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캉브론이 프랑스의 역사적인 전투들을 승리로 이끌던 19세기 초반은 프랑스 국력이 최고조로 달했던 전성기였다. 그 당시 유럽을 제패했던 프랑스는 해상무역이 번성하였고 당시 낭트는 프랑스의 해상무역 중심도시였다. 나는 프랑스 전성기의 흔적을 찾아 다시 낭트 구시가의 동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프리카와 신대륙을 오갔던 무역의 도시답게 낭트에는 다양한 대륙의 맛이 어우러진 음식문화가 그대로 남아있다. 무역 전성기의 낭트에서는 바다 밖에서 수입한 사탕수수로 설탕을 만드는 설탕산업이 크게 발전하였다. 그리고 이 설탕을 원료로 만들기 시작한 낭트의 과자는 프랑스 내에서도 명성이 널리 퍼져 나갔다. 다행스럽게도 낭트의 과자들은 낭트 구시가 역사 오랜 과자 가게들 안에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