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2일 파인텍(구 스타케미칼) 노동자 박준호 홍기탁씨가 서울 목동 서울에너지공사 75m 굴뚝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노순택
이제 와 고백하지만 박근혜 헌법재판소 판결을 20여 일 남겨놓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캠핑촌 입주작가였던 최병수 형과 파인텍 친구들이 합심해 광장 한 켠에 한반도 지도 모양의 거대한 철제 조각물 작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곧 광장이 닫힐 지도 모르는데 왜 이제야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그들이 바보스럽다기도 했습니다. 무슨 뜻인 줄 아는 이들은 모르는 채 '그러게 말이야'하고 맞장구치고 말았습니다. 그 철제 조각물은 박근혜 파면이 인용되지 않을 시 그들이 올라가기를 결심한 '망루'였습니다. 누구든 자기 방식으로 마음 속에 망루 하나씩을 떠올리던 날들이었습니다.
다행이 그 겨울을 무사히 건너 온 그들이 다시 목숨을 걸고 이 추운 겨울 75m 굴뚝 위에 올라가 있습니다. 눈에 띄지도 않는 외진 곳입니다. 오늘로 408+40일. 그들이 끝나지 않는 고공농성일을 세는 셈법입니다.
'잘 있다'고 합니다.
영하 5도라는데 하나도 안 춥댑니다.
걱정말라고 합니다.
"금세 끝나겠능교. 잘 있을랍니데이." 합니다.
그러나 그러지 말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이 하루 속히 우리 곁으로, 이 평지로 내려올 수 있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다.
촛불항쟁을 함께 일군 그들이,
이제 그만 2200만 노동자 가족들이, 조금은 평온하고 안전한 삶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안타까운 마음에 친구들과 사회 각계의 분들이 제안자가 되어 올해가 가기 전 그들의 하늘을 한번쯤은 함께 바라봐주는 날을 갖자고 합니다.
촛불항쟁의 원년인 2017년 마지막 날인 12월 30일을 그들과 함께 보내주자고 합니다. 그들이 살아온 지난 십수년이 그랬듯 큰 뜻과 의미가 없을 수도 있는 날입니다. 그러면 어떻겠습니까. 그런 평범한 이들의 꿈과 노동이 모여 촛불항쟁도 이루고, 새 정부도 세우는 것 아니겠습니까.
12월 30일이면 "408+49일"이 된다고 합니다. 그들의 고통의 숫자가 희망의 숫자가 될 수 있게 우선 458명의 제안자 분들을 모십니다. 457개의 촛불의 마음을 모읍니다. 4570개가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특별한 자격도 필요 없습니다. 당신의 발걸음 하나가 가장 커다란 선물입니다. 다만 오실 때 작은 손수건 하나씩만 꼭 챙겨와 주시면 좋겠습니다. 빨리 우리들 곁으로, 가족들 곁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는 희망의 손수건들을 굴뚝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안양천변 가로수들에 걸어주면 좋겠습니다.
"플로리다 주의 포트 라우더데일 해변으로 가는 붐비는 버스의 맨 앞자리에 허름한 옷에다 돌부처 같이 무표정한 표정인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아까부터 그를 지켜보던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버스가 휴게소에 서도 한번도 내리지 않는 그에게 여자가 사연을 물어보았다. '빙고'라는 이름의 그는 4년을 형무소에서 보내다가 석방되어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가석방이 결정되던 날, 아내에게 편지를 썼소. 만일 나를 용서하고 받아들인다면 마을 어귀 참나무에 노란 손수건을 걸어 두라고 말이오. 손수건이 보이지 않는다면 난 그냥 버스를 타고 어디로든 가 버리는 거요."그의 집이 있는 마을이 다가오자 그의 얼굴은 긴장감으로 굳어 갔고, 그의 사연을 알게 된 승객들은 창가에 하나 둘 붙어 커다란 참나무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앗! 저기 봐요! 저기!"그때 승객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소리쳤다. 커다란 참나무에는 온통 노란 손수건들이 뒤덮여 있었다. 나무 아래에 단 하루도 그를 잊어본 적이 없는 그의 아내가 서 있었다."- <노란 손수건 이야기> 중에서어려서 괜스레 눈물짓던 이야기였습니다. 사람의 마음만큼 따뜻한 게 세상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들이 빨리 내려와 경북 어느 사투리가 억센 고향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꿈꿔봅니다. 너무 오래 그들은 돌아가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