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가 얼룩말
분홍고래
아리아나 파피니 님이 빚은 그림책 <이제 나는 없어요>(분홍고래 펴냄)를 읽는데, 첫 대목부터 움찔합니다. 다음 쪽에서는 찌릿합니다. 저는 '콰가 얼룩말'이나 '상아부리 딱따구리'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어요. 그러나 이 같은 지구이웃은 틀림없이 이 지구에서 무척 오래 살았고, 무척 아늑하게 살았으며, 무척 아름다이 살았다고 합니다. 다만 사람들이 이러한 지구이웃을 처음 마주하고 난 뒤에 대단히 빠르게 자취를 감추었대요.
아니 '사람들'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지구이웃하고 사이좋게 살던 '다른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운하가 개통되면서 관광객이 늘어났고 술집, 식당, 호텔 그리고 자동차 대여점 등이 늘어나면서 우리가 살 수 없는 환경으로 변했어. 결국, 나는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고 말았어.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몰라. 내가 이곳에 계속 살았다면, 인간들이 이곳을 망가뜨리는 것을 지켜봐야 했을 테니까. 육지뿐만 아니라 푸른 하늘까지도. (5쪽/테코파 민물고기)
수수한 텃사람은 지구이웃을 먹잇감으로 삼더라도 먹이로 삼아야 할 적에만 알맞게 사냥을 했습니다. 이를테면 북중미 물소떼를 들 수 있어요. 북중미 텃사람은 물소를 함부로 사냥하지 않았습니다. 이와 달리 북중미에 전쟁무기를 앞세워 들어온 서양사람은 재미삼아 물소떼를 사냥했어요. 기나긴 해에 걸쳐 물소떼하고 텃사람은 함께 살아왔지만, '어떤 사람들'이 총으로 사냥놀이를 하면서 이 땅에서 한 갈래 지구이웃은 자취를 감추어야 했습니다.
그림책 <이제 나는 없어요>는 이 지구에서 '어떤 사람들' 때문에 자취를 감춘 지구이웃을 이야기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추고서 하늘에서 살아가는 지구이웃이 '어떤 사람들'한테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를 들려주는 그림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