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젠더 수업> (김고연주 지음 | 창비 펴냄 | 2017. 11 | 201쪽 | 1만2000 원)
창비
베이비부머이긴 해도(늙었지만, 고리타분하지만, 꼰대지만...) 저란 인간은 조금은 트인 사고를 하려고 노력중이거든요.
남녀, 어른아이, 동서양, 작은 것 큰 것 등등은 '틀림'이 아니고 '다름'이라고 너덜너멀 주절거릴 줄도 알고요. 다른 이들이 보면 시답지 않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나름 '틀리다' 보다는 '다르다'라고 말하며 살죠.
그러나 실제로 아직 여성에 대한 오롯한 편견을 마음 속 깊숙이 쭈그려 밀어 간직하고서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사람들이 멀쩡히 대로를 활보하는 게 우리들이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재이기도 합니다. 꼭 대한민국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그렇죠. 우리나라가 좀 심하고.
'오줌론'보다 더한 '기저귀론'도 있다는 거 아세요. 박진영의 <결정적 말실수>를 읽고 쓴 글에서 한번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관련기사:
'상처받는 말에는 공통점이 있다'). 2003년, 기독교 대한 예수교 장로회 당시 총회장 목사가 신학교 채플시간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교단에서 여자가 목사안수를 받는다는 것은 턱도 없다. 여자가 기저귀 차고 어디 강단에 올라와."
이게 바로 '귀저귀론'입니다. 그 설교를 듣고 있던 학생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해야 했습니다. 여성 목사 안수를 허락하지 않는 교단 방침을 강력히 주장하려던 의도였던 것인데, 여성 폄하의 모범 답안지가 돼버린 것입니다. 우리 속에 내재된 여성비하가 얼마나 심각한지 그저 일례일 뿐이라는 생각입니다.
1948년과 2003년의 꽤 너른 시차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의 중심에는 아직 가시지 않은 남녀차별의 앙금이 도사리고 있답니다. 그건 남성들만도 아닙니다. 여성들 스스로도 '나는 여자니까' 하면서 지나쳐버리는 여성 비하적 태도가 많답니다.
여성성, 남성성은 만들어진 '젠더'나도 모르는 사이에 인식되어 생각 근저에 뿌리박은 이런 여성에 대한 편견의 근원이 어디로부터일까요. 저자는 그걸 차근차근 알려줍니다.
원래 아이들은 성에 대한 개념 없이 태어난다고 합니다. 그러나 '붉은색은 여자 아이 옷 색깔, 남자 아이는 장난감총, 여자 아이는 비비인형, 여자는 착하고 예쁘게, 남자아이는 울면 안 돼' 등 이분법적 고정관념이 살면서 터득되면서 정형화 되는 것이 '만들어진 젠더'라고 합니다.
'만들어진 젠더'라는 개념은 이미 1970년대 들어 풍미한 페미니즘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성'은 타고 나는 것이지만, 여성성이나 남성성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란 데 '젠더'라는 표현의 초점이 있죠.
저자는 '젠더'라는 표현을 위해 시몬느 보부아르를 차출합니다. 시몬느 보부아르는 <제2의 성>에서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표현을 합니다. 생물학적 '성(sex, 性)'이란 단어 대신 사회문화적 '젠더(gender)'라는 단어가 탄생하게 되는 계기가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