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추위에 얼었다 녹았다 반복하면서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시래기
오창균
절임배추와 김장을 끝내고 남은 배추와 무시래기를 큰 솥에 삶아서 널었다. 푸릇하던 채소는 겨울 추위에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무게가 1/10로 줄어 가벼워진다.
어릴 적 고향에서는 겨울이면 김장김치와 시래기가 밥상을 떠나지 않았다. 천장에는 볏짚에 걸린 메주가 매달려 있었고 따뜻한 아랫목에는 이불을 덮은 청국장이 익어가는 냄새가 났다. 그때가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도시에 지친 어느 날, 흙에서 사람 냄새를 맡다"농사를 왜 하게 됐나요?" "농사로 먹고살 수 있어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나 자신에게도 던졌던 물음이다. 귀농(歸農)의 삶을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농사는 힘들고 돈벌이가 안 된다는 현실을 농촌 출신인 내가 모를 리 없었기에 내 인생에서 농사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가능하다면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거나 되도록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가족과 행복하게 살아가는 삶이라면 만족할 수 있었다. 그렇게 물 흐르듯이 평범하게 살아가면서도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또한, 돈으로 소비만 하는 도시적인 삶에 대한 회의와 가치 있는 삶에 대한 물음이 계속 생겨났다. '단순소박한 삶'으로의 전환을 위해 도시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가족이 있는 가장으로서 대책 없이 무작정 나만의 생각을 고집할 수는 없었다. 그때가 벌써 20년 전이다. 조금씩 준비를 한다는 생각으로 귀농교육과 농촌탐방도 다녀보고, 농사일도 해봤다. 어느 순간 흙에서 사람 냄새가 느껴지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농부가 됐다. 친환경 유기농업을 알게 된 것 또한 지금의 농사에 밑거름이 됐다.
10년 전, 첫 농사는 손바닥만 한 텃밭과 옥상에 만든 상자텃밭에서 시작됐다. 방에 누우면 천장이 텃밭으로 보이고, 작물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아침에 일어나면 매일같이 물통을 들고 옥상텃밭으로 올라가서 작물을 돌보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주말이면 전철을 타고 텃밭에서 하루를 보냈다. 점차 농사에 재미를 붙이면서 '무아지경'으로 빨려 들어가는 나 자신을 느낄 수도 있었다. 이때부터는 농사와 관련된 책은 인문학이든 기술서적이든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으며, 책장에는 농사와 관련된 책들이 다른 책들을 밀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