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체류 비자를 받으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 호치민 공항 비자 발급소.
이승숙
베트남과 라오스는 무비자 체류 기간이 15일이다. 보름 이상 체류를 해야 할 경우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 두 달을 계획하고 온 우리는 당연히 비자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호치민 공항에 도착하자 비자를 발급해주는 곳을 찾아 나섰다.
여러 번 외국에 나가봤지만 비자를 발급받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일정이 길어봐야 열흘 남짓이었으니 비자 받을 일이 없었던 것이다. 비자 발급에 관한 사항들을 미리 알아보고 왔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이 일은 장애물 경기처럼 어렵기만 하다.
베트남어를 못 해도 영어만 잘 하면 괜찮을텐데, 우리는 영어도 할 줄 모른다. 그나마 조금 아는 영어 단어조차도 막상 말하려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니, 영어 앞에만 서면 저절로 기가 죽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떼지 못한다. 자신이 없어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다.
눈치코치로 남들 하는 것 보며 서류를 작성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도대체 일처리를 어떻게 하는지 도통 줄이 줄어들지 않는다. 창구 안에는 사람이 아홉 명이나 있는데 일을 하는 사람은 그중 절반 밖에 되지 않는다. 심지어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노닥거리는 사람도 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조급증을 내는 우리, 느긋한 그들조급증을 내는 우리와 달리 키 크고 코 큰 사람들은 느긋하다. 심지어 바닥에 드러누워 있는사람들도 있다. 여기가 마치 놀이터이기라도 한 양 그렇게 놀고 있다. 그들은 남의 눈 따위는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논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면 어떻게 놀던지 그것은 그의 자유다.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는 그렇게 하지를 못 한다. 평생 학생들을 가르쳤던 남편은 더더구나 그런 행동을 할 수 없다. 외국에까지 나왔는데도 여전히 우리는 한국의 규범에 메여 있다.
"여보, 당신 머리에 자유를 주자. 33년간 당신 머리도 규율에 얽매여 있었는데, 자유를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