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고창은 미당 서정주의 고향으로 부안면 선운리에는 미당시문학관이 자리하고 있다. 문학관에는 서정주의 작품과 사진, 유품 등이 전시돼 있다.
연합뉴스
나는 그때 그 발언에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내가 근현대사를 깊이 공부하고, 항일유적지를 답사할수록 조 이사장의 말에 차츰 공감했다. 언론인 정운현씨(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는 <친일파는 살아있다>라는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민족을 배반하고 일신의 영달만을 꾀했던 친일파 가운데 자신의 죄과를 사죄한 자는 겨우 손에 꼽을 정도다. 반면 그들 가운데는 자신의 친일을 미화하거나 변명하였으며, 더러는 독립유공자로 둔갑해 훈장을 받기조차 했다. 특히 그들의 후예(후손 및 후학)들 가운데 더러는 공공연히 친일 전력자의 이름을 딴 상을 제정하거나 기념사업회를 만들어 이들의 친일 경력을 세탁하고, 심지어 미화작업에도 나서고 있다. 민족정기가 제대로 선 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그야말로 파렴치가 극에 달한 형국이다." - <친일파는 살아있다> 7쪽일제강점기에 자의 혹은 타의로 친일행위를 한 문인은 여럿 있다. 그중 미당 서정주의 친일 행각은 그 심도가 깊을 뿐 아니라, 이후 참회하거나 자성의 빛을 보이지도 않았다. 지금까지 드러난 그의 친일작품 목록을 보면 <징병 적령기의 아들을 둔 조선의 어머니에게> 등 평론 2편, <인보의 정신> 등 수필 3편, <최체부의 군속지망> 소설 1편, <항공일에> 등 시 4편 등 10편이다. 이중 <항공일에>는 일본어로 발표했다.
백 번 양보해서 그 시절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친일의 글을 썼다고 해량(海諒)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해방 후 자유당 때에는 이승만 대통령 전기를 써서 권력에 빌붙었고, 5공 시절에는 전두환 대통령 찬가를 써서 아첨했다. 그는 2000년에 눈을 감았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 있었다면 어떤 글을 내놨을지 가늠이 안 될 정도다.
대학에서 강의한 황현산 위원장은 문학평론가로 누구보다도 미당에 대한 연구가 깊다. 2001년 <창비> 겨울호에 실린 '서정주의 시세계'라는 비평문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는 미당의 생애 행적뿐 아니라 시 세계까지도 두루 관통하고 있다. 그것은 문학비평가로서 지당한 일이다.
한국 문학계에 '미당문학상'은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상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미당 서정주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상이다. 이 상을 주는 곳은 <중앙일보>. 2001년부터 미당문학상 수상자가 배출됐다. 제1회 수상후보였던 시인 오규원은 수상을 고사한 바 있고, 최근에는 송경동 시인이 이 상의 후보조차도 싫다면서 거부한 바 있다.
황현산 위원장은 당시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수차례에 걸쳐 미당문학상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이는 미당의 친일 행적을 용인 혹은 방기하는 자세다. 문학비평가로서의 양식이 의심스럽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럼에도 황현산 교수를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으로 앉힌 것은 실책이라고 생각한다. 황현산 교수가 박근혜 정부 당시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전력이 있다는 점, 또한 그가 문재인 대선후보 지지선언에 동참했다는 점 등을 미뤄본다 하더라도 황 교수를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에 앉힌 것은 오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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