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1일 장하다내인생 프로젝트 현장모습11월 11일 장하다내인생 프로젝트 현장모습
서울혁신센터 커뮤니케이션팀
'음식 맛은 장맛'이라고 했던가. 된장, 간장, 고추장, 청국장, 막장, 등겨장, 빡빡장 등 한국인에게 장맛은 음식 맛과 직결돼 있다. '잃어버린 장맛을 찾아서'라는 부제를 붙여도 좋을 이 프로젝트는 장류를 직접 만드는 체험과 발효의 맛을 느껴볼 수 있는 장기 프로젝트로 기획됐다.
지난 3월 1일이 시작이었다. 200여 명 시민들이 맛동에 모여 '장 독립'을 선언했다. 고은정 약선식생활연구센터 대표 주도로 전통 방식 발효 된장과 간장의 우수성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직접 장을 담갔다. 장독대에 겨울 동안 바람을 맞고 햇볕을 쬔 콩 한 말로 만든 메주와 소금 4킬로그램을 넣었다. 장맛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물은 아리수 20리터로 넣었다.
그리고 4월 '장 가르기'를 거쳐 11월 마침내 장을 수확(!)했다.
지난 11월 11일, 혁신파크 극장동 뒷마당과 맛동이 북적거렸다. 8개월 이상 묵은 된장과 간장을 수확한다는 기쁨이 넘실거렸다. 추운 날씨에도 시종일관 웃음꽃이 피었다. 장독대 뚜껑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온 장은 널리 향기를 떨쳤다. 혁신파크 11월은 장이 무르익은 계절이었다.
장맛은 관리에서 나온다 조선 궁궐, 왕가가 먹을 장을 담아 보관하던 장소를 장고(醬庫)라고 했다(궁궐 안 장맛을 책임지고 관리하던 궁녀를 장고마마라고 불렀다). 혁신파크의 장고는 극장동 뒷마당이었다. 장맛을 잃은 혹은 대규모 공장에서 생산돼 획일화된 장맛에 길들여진 시대, '장 독립'을 선언한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콩을 발효시켜 만든 장은 우리 음식의 제맛을 내는 대표적인 조미료(!)였다. 선조들은 '음식 맛은 장맛'이라고 할 만큼 장을 중히 여겼다. 때문에 장을 담그고 관리하는 데 정성을 기울였다. 한 집안의 음식 솜씨를 장맛으로 판단하거나 장맛이 바뀌면 집안에 어떤 일이 생겼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장맛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고은정 대표는 '장맛은 관리에서 나온다'는 짧은 강연을 통해 "장맛의 절반은 관리"라고 강조했다. 장을 담근 뒤 장맛은 햇빛과 바람, 기다림(시간)의 몫이 가장 크다. 시간이 장을 만든다는 말도 있다. 그럼에도 사람의 관심과 손길이 필요하다.
"항아리도 항상 관리를 해야 한다. 그렇다고 반려동물 키우듯 할 필요는 없다. (웃음) 화초를 키우는 정도의 관심 정도면 된다. 일주일, 보름에 한 번씩 봐주면서 곰팡이가 생기면 걸러주면 된다. 곰팡이가 생겼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황금색 장이 나온다."선조들도 그랬다. 바람이 잘 통하고 햇빛이 잘 드는 곳에 장독대를 만들고 장 상태를 자주 살폈다. 장독대 위에 금줄이나 종이 버선을 거꾸로 붙이기도 했다. 장맛을 망치는 잡신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