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투이스트 이서하는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공공기관 홍보 담당자였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꿈을 좇아 지구 반대편으로 건너갔다.
이서하
-평범한 회사원에서 타투이스트로 직업이 바뀌었다. 이 직업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아쉽게도 특별한 계기는 없다. 포르투갈에서 돌아온 후 만나는 지인마다 '어떻게 타투를 접하게 되었냐?'라고 묻는다. 모두 특별한 대답을 기대하지만 딱 부러지게 한 단어로는 설명하기가 어렵다. 원래 이것저것 배우고 기웃거리며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성격 때문인 것 같다.
공공기관 퇴사 이후에는 삶이 도전 자체였다. 인도에 가서 요가 자격증을 따고 자카르타와 말레이시아에서 에미레이트와 싱가포르 항공사 면접을 지원했었다. 마지막엔 싱가포르의 태양력 발전 선박회사에 취직했지만, 처음부터 구체적 계획이 있던 것은 아니다.
싱가포르의 비자를 기다리던 중 시간 있을 때 유럽 한번 가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경제적으로 조금 만만했던 것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였다. 이미 힐링이나 자아발견이라는 주제로 한 차례 유행을 거쳐 간 여행이었지만 나의 목적은 그보다는 저렴한 경비로 유럽을 여행하며 많은 사람은 만나는 것이었다.
사실 개인적인 종교의 영향도 조금 있었는데, 묵주 기도를 하며 하루 30키로미터 이상을 걷는 것은 고행이자 특별한 경험이다. 그때의 기억을 평생 간직하고 싶다는 욕구가 솟구쳐 무작정 타투스튜디오를 찾았는데 결국 정착한 곳이 포르투갈이었다. 장황한 설명이지만 결국 모든 일에는 그 이유가 존재하듯 나의 밭 끝에 따라 선택된 게 아닌가 싶다."
- 요즘 유행하는 '욜로(You Only Live Once, YOLO)'를 실천하고 있는 게 아닌가?"유행에 휩쓸리는 타입은 아니다. 욜로는 나에겐 꽤나 비현실적인데, 그 의미와는 다른 나만의 원칙이 있다. 예를 들면 '언제까지는 좀 더 이것저것 배우고 부딪쳐 보자'는 것이다. 물론 그 기한은 종종 바뀌기도 한다. (웃음) 욜로족은 그 순간을 즐기며 사는 부류라면 나의 삶은 자신을 귀찮고 고달프게 하는 면이 더 많다. 성격이 급하고 새로운 분야에 쉽게 흥미를 느끼고 빠르게 질리는 고유의 성격도 한몫한다."
- 유럽에서 생활하면서 '타투'의 직업을 새롭게 찾은 것이라 보면 되는가? 어려움 점은 없었는가?"모든 것이 어려웠다. 여행 중이기에 경제적 비용과 두 달 동안 하숙할 수 있는 장소, 수강이 가능한 스튜디오를 찾는 것이 먼저였다. 타투를 배우는 순간부터 여행이란 본질은 정착으로 바뀌었기에 다른 환경에 급격히 적응해야 했다.
한국과 다른 문화도 한몫했다. 타투를 배우려면 나의 등 전체를 강사에게 먼저 타투를 받아야 한다는 조건도 있었다. 당시 꽤나 무서웠다. 여행 중이었기에 가장 큰 고민은 경제적인 비용이었는데 결국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이미 60대이신 부모님께 생경한 분야인 타투에 대해 유선상으로 이해시킨다는 것이 힘들 거라 여겼는데 별말 없이 지원해주셨다.
한국에서는 아직 불법임을 알고 있었기에 귀국 후에도 계속 작업할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그곳에서 나는 철저한 이방인이었기에 마지막 실기 시험 때 나에게 타투를 받을 대상자를 구하는 것도 큰일이었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시도는 그만큼 하나부터 열까지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현실적인 확신을 두고 시작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 외국에서는 합법적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불법이다. 단순히 미용이 아니라 의학적 견해로 인해 불법이라는 의미인데 이에 대한 견해는?"현재 우리나라와 일본을 제외한 모든 국가가 타투에 대해 합법으로 지정되어 있다. 여러 가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요지는 의사 면허증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침습적 행위를 한다는 것에서 첨예하게 갈린다.
사실 이 부분은 위생 때문인데, 그에 대한 적절한 가이드라인이 선행되는 것이 우선이다. 타투 작업을 받은 추정 인구가 100만 명이라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한 번에 모든 타투이스트와 의료계를 만족시키는 방안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대안 없이 무작정 타투 합법화를 반대할 게 아니라 양쪽의 입장에서 단계적으로 풀어갈 수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