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스틴 사코가 남아공행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 날린 트윗. 그녀의 트윗이 전세계로 퍼져 나가며 많은 비난을 받았다.
저스틴 사코 트위터
대중의 공격을 받는다는 게 어떤 일인지 화살을 쏘는 자들은 맞는 자의 입장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내가 쏜 화살은 하나 뿐이니, 상대가 받는 화살의 총합이 수만 개임을 생각하지도 않는다. 가상의 공간에서 쏟아지는 공격이 인간의 실제 삶에 어떤 타격을 주고, 몸과 마음에 어떤 상흔을 남기는지 알지 못한다.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대중의 공격으로 삶이 파괴되는 사례는 늘어만 간다. 유명인, 권력자, 사회적 강자, 누구든 예외가 아니다. 온라인이 공동체의 가장 큰 소통 공간이 된 오늘, 이 문제는 누구에게도 결코 사소하지 않다.
"저스틴 사코가 있어요. 여기" 2013년 연말, 미국의 유명 광고회사 간부로 일하는 저스틴 사코(Justine Sacco)라는 여성이 남아공행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 짧은 트윗올 올린다. "아프리카로 감. AIDS 안 걸렸으면 좋겠어. 농담이야. 나는 백인이거든!" 팔로워는 겨우 170명이었다. 이 트윗 하나가 그녀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팔로워를 많이 거느린 기자 샘 비들(Sam Biddle)이 그 트윗을 리트윗 했고, 삽시간에 그녀는 전 세계인 앞에 인종차별주의자가 되었다. 회사는 사과문을 쓰고, 대중은 그녀의 해고를 요구했다. 저스틴 사코의 이름은 불과 열흘 사이에 122만 번이나 검색되었고, 끔찍한 비난에 시달렸다. 대중의 공격으로 직장마저 잃었다. 샘은 자신의 블로그에 이 사건을 포스팅 하면서 정의를 수행했다고 믿었다.
6개월 후 그는 그녀의 이메일을 받았고, 만났다. 그는 "저스틴 사코가 있어요 여기."라는 메일 제목을 읽고 졸도할 뻔 했다. 사건이 일어난 지 1년이 되는 날, 샘은 Gawker에 저스틴을 향해 공개 사과문을 썼다.
"그래서 나는 사과했다. 나는 내가 그녀의 트윗을 포스팅 하고 그녀를 미디어의 잔혹함과 비참함의 세계로 텔레포트 시킨 것에 대하여 사과하였다. (그러면서도 나는 내가 미디어감시전사로서 비판 작업을 수행하였다는 아이 같은 변명을 되뇌이면서 내가 실제로는 미안하지 않다고 나를 확신시키려고 하였다.) 나는 겨우겨우 내가 했던 일이 옳았다고 반쯤 확신시키고 있었는데, 그 때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당신이 인터넷에서 파괴한 누군가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경우가 얼마나 자주 있겠는가? 나는 멍해졌다."대중에게 공격받은 사람들, 우리가 외면한 목소리저스틴 사코가 겪은 일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어제 공격에 가담한 사람이 내일 공격의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공인이나 권력자라는 라벨이 붙으면 더 많은 화살을 받으면서도 동정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대중을 직접 상대해야 하는 유명인들은 자신의 직업 때문에 고통과 손해를 감수한다.
우리는 약자의 이름으로 호소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자신의 정의로움에 만족한다. 강자와 권력자에게 비판의 화살을 쏘아대는 것으로 불평등한 사회의 균형을 잡고 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자신의 가치관을 기준으로 잘못했다고 여기는 이들에 가해지는 불이익은 응당하게 여기고, 반대의 경우만 우려한다. 내로남불이 원칙이 되어가고, 린치의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는 없이 대상만을 문제 삼는다. 약자의 편에 서 있다는 굳건한 믿음은 타인의 삶을 해치면서도 그 고통의 크기를 가늠하지 못하게 한다. 진통제처럼 타인의 통증에 대한 감각을 마비시키고, 어떤 마약보다 강하게 흥분감을 고취시킨다.
나는 몇 년 동안 온라인에서 대중의 공격을 받은 사람들을 만나왔다. 시작은 나와 가까운 사람이 대상이 된 사건 때문이었다. 나 또한 불의하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기꺼이 온라인에서 목소리를 높였고, 내 이념에 어긋나는 사람의 이름을 거론해서 비난하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인터넷은 삶과 떼 놓을 수 없는 공간이었으므로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저스틴 사코를 만난 기자처럼, 구체적인 인간이 겪는 고통을 마주하기 전까지 정의를 외치는 나의 행동을 성찰하지 않았다. 온라인 공격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알게 된 지금, 그가 누구든 대중에게 공격 받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힘겹다.
내가 만난 피해자들은 다양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대중을 직접 상대해야 하는 사람도 있고, 평범한 직장인도 있다. 가족이 공격받는 걸 지켜봐야 했거나 그 자신 이념에 몰두해 있던 이도 있다. 온라인 상의 공격이 이들에게 어떤 상흔을 남겼는지, 공격에 가담한 사람도, 방관자였던 사람도 알지 못한다. 세상은 불의라 낙인찍힌 사람의 이야기는 들으려 하지 않는다. 설사 그(녀)의 행위에 불의가 섞여 있다 해도 한 인간의 삶을 총체적으로 낙인찍는 건 섣부르고 지독한 폭력이다. 만일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가 있다면 이 폭주를 조금이라도 멈출 수 있을까?
낙관할 수는 없을지라도 그들의 간절한 증언, 고통을 전하는 생생한 언어를 조심스레 내어 놓는다. 부디 화살을 쏘아대기 전 이들의 목소리를 한 번 쯤은 들어주기 바란다. 약자의 편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 당신이라면 더욱.
"화학 약품 가득한 가스실에 살고 있는 느낌이에요""악플러를 고소하고 싶은 생각이 많았어요. 잡는다고 뭐가 달라질까? 그들의 특성이 상대 안 하면 재미없어 하고, 언제든 물어뜯을 거리는 계속 생기니깐 빨리 다른 사건이 터져서 내 사건이 덮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사건을 겪고 난 후) 자는데 목이 졸리는 느낌이 들었어요. 몇 번 그러다가 숨이 안 쉬어질 정도로 목이 졸리는 느낌이 와서 아내가 걱정해서 병원에 갔더니 약을 주더라고요. 한 달쯤 그러다가 지나고 나니깐 또 그 증상이 왔어요. 스트레스가 쌓인 상태에서 해결이 안 되니깐 잠도 안 오고, 약을 다시 먹었어요. 항우울제, 불안장애약. 수면제. 더 이상 더 많이 먹으면 안 될 정도로 먹고 있어요." (예술가 A)"나는 스스로 공인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공인이라는 사전적 의미에는 맞지 않아요. 연예인들이 누리는 호의처럼 팬이 있기 때문에 대중들한테 받는 유무형의 혜택이 있고 그 상태에 맞는 책임은 따른다고 생각하지만 공인의 책임을 지는 건 아니죠. 누군가에게 잘못했다면 그 사람한테 잘못에 맞는 책임을 지면 되는데, 내가 공인이어서 이런 취급을 받아도 된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었어요. 내 경우는 몸으로 영향이 왔어요. 일단 숨을 못 쉬겠는 거예요. 흉부에 압박이 와서 날숨을 못 쉬었어요. 밖에 안 나가려 했고 어쩌다 나가게 되면 공황장애처럼 사람들 안 보이게 땅을 보고 걷고, 사람 많은 쪽을 피하려고 벽에 붙어 다녔어요. 심장이 내가 느껴질 만큼 너무 벌렁벌렁하고 계속 화가 나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자살 생각도 했죠. 1주일 정도 지났을 때 4일 동안 밥을 아예 못 먹었어요." (예술가 B)"광장에 끌려 나와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한테 돌을 맞는데 나 뿐 아니라 가족들까지 끌려나온 느낌이었어요. 나는 아무리 아니라고 주장해도 아무도 내 말을 듣지 않고. 나를 비방하는 글을 보는 건 화학 약품 가득한 유독성 가스실에 살고 있는 느낌이에요. 정신이 피폐해지는 걸 느껴요. 날마다 아침 운동하고, 잊으려고 노력하고 근근이 버티고 있는 거지 이대로 가면 뇌암이 걸릴 거 같아요. 칭찬만 받고 살아도 어려운데 인간 말종, 인간 쓰레기 이런 말을 거의 매일 들으니까. 고소해서 경찰에 가도 그 얘기를 내 입으로 또 해야 돼요. 나를 욕하는 글만 봐도 고통이 오래 가는데 그런 글을 아예 끼고 사는데 그게 어떤 마음인지 몰라요. 분노와 억울함이 가시지 않아요. 약을 먹고 있어요. 불면증이랑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요. 견딜 수 없어서 밖에 나가면 외롭고 아무도 없어요. 그래서 다시 들어오면 또 가스실이에요." (직장인 C)"제일 힘들었던 건 악플이었어요. 익명의 대중들이 성추행범, 파렴치범, 여성한테 폭력이나 일삼는 사람으로 매도하고 블로그에 악플이 삼 백 개 쯤 달렸어요.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러니까 그들은 절대 다수고 저는 혼자니까 어떻게 할 수가 없이 너무 막막했어요. 나중에 분위기가 좀 가라앉은 후에 악플러들한테 하나하나 댓글을 달았어요. 비공개로 돌렸더니 고소하겠다는 말을 접한 악플러들이 자기가 무슨 댓글을 썼는지 알려달라고 해요. 절반 정도는 사과를 보내왔어요. 제가 원했던 건 고소 이전에 면대 면 대화를 하고 사과를 받고 싶었어요. 익명의 대중들한테 자기가 그때 한 개인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자각을 하고, 가능하면 나한테 사과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나마 일반인들이 진보운동을 하는 사람들보다는 나았어요." (직장인 D) "비난 글을 다 읽어봤어요. 그 때 마음은 짜증이 났어요. 진심으로 다 이해해보려는 마음으로 읽어봤고 노력했어요. 그러다가 000 죽어라, 빻은 한남충 이런 거 읽으면 의식이 흐려져요. 그걸 하루에 한 삼십 번 정도 왔다 갔다 하다 보니까 두통이 왔어요. 그래서 한의원에 가서 머리에 침을 맞았어요. 처음 (온라인 공격)사태가 나고 비난 글을 읽을 때는 이렇게까지 짜증이 나지는 않았어요. 그때는 그게 실수라고 생각 안했는데 지금은 이게 뭐지? 한 번 끝까지 해봐?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해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싫고 눈 마주치는 게 무서워요. 나를 설명해도 안 먹힐 거 같고, 설득하고 싶은 마음은 없고, 아군도 짜증났고. 내 편을 들어준다는 사람들이 상대한테 똑같이 모욕하고 조롱하는 태도도 싫었어요." (예술가 E)"대중을 상대로 돌을 맞는 게 어느 정도의 벌인지를 그 사람들은 몰라요. 십만 명한테 비난을 받는다는 건 그게 저를 죽이지는 못할지라도 감당할 수 없는 비난이거든요. 인터넷 문화에 익숙했던 나도 이 정도로 힘들 줄은 몰랐어요. 글을 써서 수만 명한테 까이는 것과 내 삶을 두고 비난받는 건 달라요. 훨씬 더 심각했어요. 심지어 사적으로 알거나 나를 칭찬하고 좋아했던 사람들한테 당신은 왜 함께 비난하지 않느냐며 십자가 밟기를 시켰어요. 나와 연락하는 자체만으로 비난을 받는다고 했어요. 근대 사회라는 게 범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교화를 받고 사회에 재통합을 시켜야 하는데 네티즌들이 죄에 대해 양형 기준으로 삼은 것은 추방이에요. 단순히 내가 활동하는 영역에서의 추방이 아니라 인간관계까지 다 끊어버리는, 사실상 공동체 전체로부터의 추방을 원한다고밖에 볼 수 없어요. 공격의 총합은 엄청나게 큰데 개인은 자기 잘못이 없어요. 자기는 게시판에 글 하나 쓴 거니까." (작가 F)"이 일이 생기고 나서 '어? 그거 다 끝난 거 아냐? 아무 일도 아니었잖아?'이런 얘길 많이 들어요. 끝났다니...당사자는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걸 몰라요. 당사자가 겪는 피해는 남들이 생각하는 거의 수백 배예요. 사회적인 재갈부터 시작해서 상처가 정말 상상 이상이라는 걸 느꼈어요. 가족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까지 고통이 큰 줄 몰랐을 겁니다. 저한테는 굉장한 교훈이었어요. 처음 온라인에서 매도당할 때 진짜 답답했던 게 살인자도 자기변론을 하는데 세상에... 이 마녀사냥은 어떤 기회도 주어지지 않아요.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경우가 어디 있나요. 상대의 어떤 말도 듣지 않는 이 현상이 너무 기이했어요. 어떤 말을 하면 또 꼬투리를 잡히고, 말을 하면 할수록 더 나쁜 놈이 되어버리는 상황. 말 자체가 허용이 안 되는 걸 보면서 모순이라고 생각했어요." (피해자의 가족 G)그래도 되는 사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