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제 37회 이상 문학상작품집, 대상 수상작 김애란, 침묵의 미래
문학사상
*<침묵의 미래> : 세계화를 뜻하는 글로벌이라는 단어도 이제는 식상하시죠? 거리에는 세계적 기업의 프랜차이즈가 드문드문 보이는 것이 한두 해의 일은 아니잖아요. 중국에서도 러시아에서도 콜라를 마실 수 있다는 것을 보면 착잡한 마음도 드네요. 식생활의 문화가 어느덧 동일화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소수부족의 언어 역시 이제는 희귀화 되어 어쩌면 소설처럼 박물관이 만들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관람의 대상이 되어가는, 멸종 되어가는 언어와 그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작가는 어떤 목소리로 우리에게 들려줄까요. 잠시만 조용히 해주실래요? "크허, 흐어어, 흐억"(143쪽) 짐승처럼 울부짖는 소리 같지만 사실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거든요.
*<풍경의 쓸모> : 저는 교수 임용을 앞둔 대학 강사입니다. 제게 아버지란 사람은 참 전형적인 사람입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어머니와 이혼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부양에 대한 책임을 게을리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참 열심히, 때가 되면 아버지는 제게 선물을 보내주셨죠. 그런 아버지는 아버지의 아내가 암에 걸렸다고 제게 돈을 빌려 줄 수 있냐고 묻네요. 이것 말고는 제게는 또 다른 일이 있습니다.
곽 교수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의 차를 한번 빌려 탄 적 있습니다. 그는 약간의 반주를 걸쳤습니다. 마뜩찮았지만 그의 차를 탔습니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사고가 났습니다. 그를 대신해, 저는 어차피 차도 없으니까 제가 대신 운전한 걸로 해서 사고 처리를 끝냈습니다.
그렇게 그와 저 사이에는 비밀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교수 임용이 있을 때 그 자리에 곽교수도 참여했다는 말을 제 은사님께 들었습니다. 곽교수는 저를 대면할 때와는 판이한 표정으로 임용 반대를 강력히 주장했다고 하네요. 잠깐만요. 죄송합니다. 휴대폰을 보니, 아버지께서 부고 소식을 알리는 메시지를 보내셨네요. 참 피곤합니다.
*<가리는 손> : 엄마는 한국인이라 잘 모르는 게 많아요. 저는 아빠가 동남아쪽 사람이라고 했어요. 엄마 말로는 "재이야, 너희 아빤 여기 일하러 온 거 아니야. 공부하러 온 사람이었어. 고향집에 하인도 있었대."(204쪽). 그러면 뭐하겠어요. 난 아빠를 보지 못했죠. 엄마에게 한번은 물어본 적도 있어요. 왜 헤어졌는지. 엄마는 제대로 답을 해주지 않았어요. 서로 성격이 안 맞으면 민주주의이니까 토론을 했어야지.
사실 최근에 엄마를 속상하게 만든 일이 있었어요. 박스를 줍는 할아버지가 중학생들에게 맞아서 그만 돌아가셨어요. 그 현장에 저도 있었는데요. 그만 그 모습이 그대로 근처 블랙박스에 찍혔습니다. 영상이 인터넷에 퍼졌어요. 엄마와 함께 경찰 조서를 작성하기도 했지요. 말하기는 그렇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곳이, 인형 뽑는 기계가 있는 곳이거든요. 저는 할아버지가 쓰러진 자리에서 인형을 훔쳐 달아났어요. 그 인형이 갖고 싶었어요. 엄마는 이 일을 어떻게 느끼실까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 남편이 체험활동 교육을 하던 중 사고가 발생했어요. 아이가 물에 빠진 것이죠. 남편 권도경은 아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졌어요. 그리고 남은 저는 그 남편이 살아생전 대화를 나눈 휴대폰 속 앱 시리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프로그램화된 시리가 답하기 어려운 질문도 있었죠. 예를 들어 고통이 무엇이냐는 질문 같은거요. 그동안 사촌 언니가 휴가를 떠난다며 비워둔 언니의 집에도 다녀왔어요.
그곳에서 대학 동기인 현석을 만났죠. 그에게는 도경이와는 헤어졌다고 둘러댔죠. 여행 동안 장미색 비강진이라는 피부병도 앓았어요. 여행을 돌아와서 보니 편지 한 통이 도착해 있네요. 남편의 장례식 때도 오지 못한 아이의 누나 편지였어요. 편지의 내용보다 먼저 보인 것은 "글씨를 잘 알아볼 수 있게 몇 번이나 연습했을 문장들이 직선 위에 불안정하게 서 있는"(265쪽) 형체였어요. 그때서야, 남편은 삶이 죽음에 뛰어든 게 아니라 삶이 삶에 뛰어들었다는 것을 자각했어요.
쓰고보니 어쩌면 이 소설은 아무에게도 선물하지 않아야 하는 건 아닐까 싶다. 그래도 만약 당신이 특히 연말에 괜찮다고 위로해야 할 상대가 있다면, 힘내라는 상투적인 말을 해야 하는 경우라면,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침묵 속에 무언가를 건네주고 싶다면, 조용히 이 소설을 선물 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값싼 동정으로 수식한 말이 아니어야 한다면 더욱 그렇다.
바깥은 여름 (여름 한정판 리커버)
김애란 지음,
문학동네, 2017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1984년생.
전남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화재협동학 박사과정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석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졸업.
로컬문화콘텐츠 기획자
해남군사회적공동체지원센터 주민자치팀 연구원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