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학교 입학 설명회 모습지난 11월 25일 을지로 위워크에서 한국형 덴마크 인생학교 '자유학교' 입학 설명회가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강나영
그러던 어느날, 서울에 살고 있는 친구들이 '자유학교'를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지방에 살고 있던 친구들은 사전 설명회가 있던 지난 11월 25일 한달음에 서울로 달려갔습니다. 설명회가 시작되고, 덴마크의 학교에서 매일 아침 조회시간에 했던 것처럼 다 함께 노래 부르기가 시작되자 알 수 없는 감정에 북받쳐 눈물이 흘렀습니다.
모두 함께 참여하며 나와 우리를 알아가는, 나를 깨우고 우리를 연결하는 공통수업,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12개의 수업, 사람책, 초청강연, 소셜다이닝, 주말여행, 개인/팀 프로젝트로 구성되는 12일간의 프로그램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이후 질의응답 시간에 설명회에 참여하신 한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덴마크 인생학교라고 해서 뭔가 특별한게 있을 줄 알았는데, 눈에 확 들어오는 무언가가 없어서 좀 실망스럽다고. 자유학교 프로그램은 나 혼자서도 다른 곳들을 찾아다니며 할 수 있는 것 같다고. 저는 그 분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덴마크 시민학교를 다니며 가졌던 의문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의 친구들이 만드는 자유학교 프로그램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어울리는 것에 집중합니다.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173년전인 1844년, 덴마크에서 18명의 농민들이 입학했던 첫번째 시민학교부터, 오늘날 덴마크 전역에 흩어져 있는 70여 개의 시민학교 모두를 관통하는 그룬트비의 핵심적인 교육철학과 깊이 닿아 있습니다. 죽어있는 말로 가득한 교과서가 아닌, 학생 한명 한명, 교사 한명 한명의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살아있는 말'을 통해 함께 생활하며 배우는 것입니다. 여기에 덴마크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뿌리가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촛불에서 경험했듯,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입니다. 깨어있는 시민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라는 것, 내가 소중하듯 다른 사람도 소중하다는 것을 압니다. 이는 나 자신이 온전히 한 인간으로 존중받아본 경험을 통해서만이 가능합니다.
나를 이루는 것은 나의 경험입니다. 나의 경험을 통해 이루어지는 나의 삶이 서로에게 가 닿아 울리는 순간은,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 나눌 때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존중받을 때입니다. 19세기 중후반, 황폐한 땅 덴마크에서 손으로 땅을 일구던 농부들은 시민학교에서 처음으로 인간적인 대접을 받는 것이 어떤 것인지 경험하게 됩니다. 자신이 다른 유한계급의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고귀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시민학교에서 민주주의에 눈을 뜬 농민들은 서로 힘을 합해야만 험난한 현실을 헤쳐나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협동조합을 만듭니다.
저와 친구들도 IPC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서로의 기숙사방에 모여 앉아 맥주캔을 기울이며, 학교가 있던 헬싱거 마을 골목 골목을 산책하며, 그리고 겨울이 깊어졌을 땐 따뜻한 난로가에 모여앉아 차를 마시며, 끝도 없는 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으며,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리고 그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짓누르는 두려움과 불안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상처가, 우리의 나약함이 터져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럴때면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만났습니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그 먼나라에서 우리는 서로 기대고 의지해야 했으니까요. 한국에 돌아온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저는 압니다. 이것이 덴마크 시민학교의 힘이라는 것을요. 19세기 말, 척박하고 막막한 삶을 헤어쳐가야 했던 덴마크의 젊은 농민들도 저처럼 느끼지 않았을까요?
작년 봄 IPC에서 수학여행을 떠났을 때였습니다. 무거운 짐을 끌고 기차역안을 걸어가던 중 자꾸 뒤로 쳐지는 저를 끝까지 기다려주던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십대 후반의 덴마크 청년이었습니다. 가을에는 친구들과 어울려 코펜하겐 시내에 놀러갔다가 길에서 넘어진 적이 있는데, 다가와서 일으켜 세워준 사람도 10대 덴마크 소녀였습니다.
덴마크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누가 남들보다 얼마나 잘났느냐에 관심이 없다고. 우리는 그냥 보통만큼 해내면 만족하는 걸 자랑으로 삼는 사람들인데, 누군가 뒤에 혼자 남거나 힘들어하고 있다면 그것은 용납 못한다고. 한 선생님은 '덴마크 시민학교란 무엇인가'라는 강의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있잖아,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기 위해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 마. 대신 서로가 서로를 믿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