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리사드철회 성주주민대책위 이중희 위원장과 사드반대김천시민대책위 김종경 위원장이 강고하게 인간사슬을 형성하고 있다.
소성리 종합상황실
11월 21일, 세 번째 국가폭력
-21일 사드 기지 공사 차량 반입 사건으로 많은 부상자가 나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때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실 수 있나요? "전보다 연대 단위들이 많이 줄었습니다. 9월 7일에는 500여 명이 모였지만 이번엔 150명 정도밖에 모이지 못했고. 그래서 전선을 뒤로 쫙 밀어서 소수 인원으로 최대한 막을 수 있는, 진밭교 쪽에서 저지 활동을 시작했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사실 많지 않아요. 그들은 방패를 들고 있고, 온갖 장비를 들고 있어요. 우리보다 10배 이상 많은 인원으로 밀고 들어왔을 때, 어떻게든 우리의 몸을 이용해서 저지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죠. 그렇기 때문에 결의된 사람들이 원통형 철통을 이용해서 인간사슬을 만들고, 컨테이너 안에 사람이 들어가서 막고, 종교인들은 컨테이너 위에 올라가서 기도했어요.
하지만 150명으로 5000명을 막는 것은 쉽지 않았어요. 결국에는 우리가 선택했던 모든 방법이 다 무너졌고, 경찰에 의해 끌려 나옴으로써 3번의 큰 싸움에서 모두 패배를 했어요. 이번에 인원 대비 중상자가 제일 많이, 4명이나 나왔다는 건 당시의 격렬한 상황을 알 수 있죠. 마을 분들이 받은 마음의 상처도 크고요. '전투에서는 졌어도 전쟁에서 이기면 된다'라는 심정으로, '이렇게 졌어도 저 사드를 뽑아내면 되지 않겠느냐'라고 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과거 상황과 비교하여 현재 소성리는 어떤 상황인가요?"사실 소성리 상황은 대선 이후에 훨씬 힘들어졌어요. 사드 문제는 촛불집회 때 6대 현안 중의 하나였어요. 사드를 외교안보 분야 최악의 적폐라고 이야기하면서 함께 촛불을 들고 사드 철회를 외쳤었죠. 그런데 6대 현안 중에 유일하게 해결이 안 되고 있는 게 사드예요.
문재인 정부가 많은 희망 속에 탄생하여 기대를 받고 있죠. 대중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죄책감과 상처를 갖고 있어서 새 정부가 잘못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비판을 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사드 배치 찬성률이 가장 높을 땐 74%까지 나왔었는데요. 저는 그 사람들이 사드가 정말 필요하고, 미사일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찬성했다기보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뭔가 생각이 있을 테니 밀어줘야지' 하는 기대가 컸다고 생각해요. 소성리에서 함께하던 연대자들도 이 때문에 많이 빠져나가서 지금은 100여 명 남짓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무너진 일상의 평화-'사드 가고 평화 오라'라는 구호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나요?"사실 이 구호는 작년에 만들어진 건데요. 탄생 배경은 짐작할 수 있죠. 사드 문제는 그저 무기체계를 갖고 오는 문제가 아니에요. 사드라는 미 전략 무기가 한반도에 놓임으로써 동북아시아에 긴장감이 조성된다는 데서 거대담론으로써의 전쟁을 이야기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안에서 일상의 평화들, 개인의 평화들이 무너지는 거예요.
물론 사드만의 문제는 아니죠. 송전탑이 들어왔을 때도, 핵발전소나 핵폐기장이 들어오는 것에서도 사람들은 한국의 전력 문제, 핵 문제, 그리고 경제 문제를 이야기하지만, 그 안에서 무너지고 있는 건 개인의 평화고, 일상의 평화고, 지역의 평화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이 사드가 가고 나서 우리가 찾아야 될 것은, '전쟁과 평화'라는 상대적인 개념에서의 평화이기도 하지만 거대한 폭력에 의해 무너지는 일상의 평화예요. 이것을 되찾았을 때 국가의 평화와 세계의 평화가 온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사드 가고 평화 오라'는 메시지가 탄생한 것 같습니다."
-성주 사드 반대 활동은 특히 원불교를 중심으로 종교계에서 앞장서서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점이 특별해 보이는데, 어떻게 그렇게 된 것인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사실 특별하다기보다는 죄송한 면이죠. 성주는 원불교의 성지라고 하는 특수성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종교가 깊이 결합되어 있어요. 송전탑 투쟁 때에도 종교들이 참여했고, 강정마을의 경우 천주교가 참여했었죠. 문정현 신부님이 아직도 강정에 계시고 평화센터가 있습니다. 사실 종교가 그런 아픈 사건들에 참여를 하면서 그 아픔 속에서 종교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치유를 하는 것이 당연한 건데, 그만큼 그것에 함께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굉장히 죄송할 점이고 반성해야 할 점이에요.
처음 시작은 원불교 성지의 문제였지만 이제는 그 목적만이 아니에요. 모든 싸움이 처음부터 거대한 평화를 이야기하지는 않아요. 당연히 처음은 '우리 집 옆에 뭐가 들어온다고? 이건 아닌데.' 하는 의문에서 시작이 되고, 거기서 공부를 하고 연대를 하다 보면 생각이 넓어지는 거죠. '아, 이게 나만의 문제가 아니고 지역의, 국가의, 세계의 문제였구나. 아, 이게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되는 거구나'라고 생각이 형성되는 거예요. 이제 성주는 원불교만의 성지가 아닌 '평화의 성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평화란 '모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