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밟고 발언하고 있는 전영수, 이성호 씨
이훈기
에필로그한 달 남짓 시간이 흘러 이성호 전영수씨의 안부가 궁금해서 연락을 했다. 두 사람 다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던 고공농성 때보다 전화통화 하는 게 쉽지 않았다. 이성호씨는 그동안 못 만났던 사람들 만나느라 정신이 없다고 했다. 울산과학대와 현대중공업 정규직 고공농성 등에 연대도 다니고 있다고 했다. 결국 일주일 만에 그와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성호씨는 그사이 운전면허증도 땄다고 했다. 얼마나 바빴는지 아직 집에 가서 가족들을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전영수씨 역시 지회 일정이며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아는 형님, 동생과 술 한 잔 하고 들어왔다는 영수씨와 통화를 했다.
영수 씨는 고공농성을 마치고 땅을 밟던 날, 주저앉고 키가 작아진 느낌이 들어 이상했다고 이야기했다. 내려와서도 한동안 방에서 못자고 거실 바닥에서 잠을 잤다고 한다. 방에서 자다가도 다시 밖에 나가서 잤다. 성호씨는 내려와서 시각적인 불편함을 느꼈다고 했다.
"땅을 밟으니 사람이 작아 보이더라고요. 와이드 화면처럼 작으면서 커져 보이는... 사람이 바닥에 붙어서 가는 거 같고, 차도 퍼져 보였어요. 오래 가지는 않더라고요."영수씨와 성호씨는 7월 26일 날 내려와 병원에 입원했다가 일주일 만에 퇴원했다. 다행히 몸에 큰 문제가 있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 다 근력이 떨어져 운동은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내려올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정확히 표현을 못하겠어요. 그냥 덤덤하면서도 울컥하는... 지금은 거기에 있었나 싶기도 해요. 뭔가 안 되서 올라간 거니까 좋은 시간이나 편한 시간은 아니었죠. 한 달이 지나니까 좋았던 시간도 아니고 나빴던 시간도 아니었던 거 같아요. 107일 동안 대단한 투쟁 하고 온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더라고요. 아무나 할 수 없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겁니다." 영수씨는 고공농성 했던 107일의 시간이 그립다기 보다는 아쉬움이 남는 시간이라고 했다. 모든 해고자들이 복직하는 걸 보고 내려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말 많이 울 거라 예상했던 '미포눈물' 이성호씨는 내려오는 날 별로 울지 않았다고 했다. 영수씨도 이 점이 의외였다고 이야기한다.
"하청지회 하창민 지회장이 발언 첫마디부터 우는 거예요. 얼마나 많이 눈물을 흘리시는지 저는 울지를 못했어요. 동지들 만난 건 반가웠지만, 복직 안 된 조합원들한테 미안해서... 다 복직되고 내려왔어야 했는데... 내려오고 나서 성내 삼거리를 10번 이상 지나갔어요. 고가 도로 위를 지나갔는데, 저한테는 거기가 고통스런 장소가 아니었으니까 별 생각이 들진 않았어요. 힘들었으면 생각이 많았을 텐데, 알려서 복직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으니까요. 농성할 때는 거기가 왕복 4차선인 줄 알았는데, 2차선이더라고요. 생각보다 좁았어요. 지금은 위로 다니니까 좋죠."성호씨 역시 100% 이겨서 내려오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했다. 이제 두 사람에게 내려가면 가장 먼저 또는 꼭 하고 싶었던 버킷리스트를 확인할 시간이다. 영수씨에게 그의 버킷리스트 1번이었던 '일상생활'을 많이 했는지 묻자 그는 생각 외로 담담하게 답변한다.
"고공농성 하면서 일상생활을 못해서 아쉬움이 많죠. 근데 순식간에 다 하면 안돼요.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천천히 조금씩 하고 있어요."8월 초에 여름휴가를 맞아 성호씨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하청지회 조합원 단합대회가 있었다. 바닷가에 가서 수영도 하며 신나게 놀았다고 했다. 밤새 술 먹으며 이야기도 많이 하고, 축하도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가 그토록 꿈꾸었던 조합원 단체 사진도 찍었다고 한다. 성호씨의 버킷리스트 1번, 영수씨와 함께 사우나를 갔는지 물었다.
"영수 동지가 병원에서 바로 면도하고 병원 샤워실에서 먼저 씻은 거예요. 사우나는 영수 동지하고 같이 못가고, 퇴원하고 혼자 갔습니다."한마디로 영수씨가 '배신을 때린'거다. 이 상황에 대해 영수씨는 '쿨' 하게 반응한다.
"병원 샤워실에서 때 벗기고, 수염은 가위로 자르고 했죠. 사우나 같이 가는 것도 좋지만, 서로 생활이 다르니까요."내려와서 첫 술을 마신 날도 잊을 수 없는 날이다. 퇴원하던 날, 두 사람이 함께 술을 마셨다고 했다. 영수씨는 첫 술을 넘길 때의 느낌을 "아~~" "하~"로 표현했다. 두 사람 모두 100여일 만에 마시는 술이 잘 안 넘어갔다고 이야기한다. 술 안 마셔도 되는 체질이 된 거 같으니 이참에 술을 끊지 그랬냐고 하자 영수씨가 정색을 한다.
"저는 술 끊으라 하면 인생 끊습니다."통화 당시, 두 사람은 9월 말에 출입증을 받고 10월 추석 연휴가 끝난 후에 복직할 예정이라고 했다. 성호씨는 빨리 복직하고 싶다고 한다.
"빨리 복직해서 동료들과 술 한 잔 하면서 하청지회 가입 시키고, 하청노동자 현실을 알리고 싶어요. 현장에서 억울한 일 당하지 않게 힘을 모아야죠. 노동법 공부도 하려고 생각중입니다. 가족한테도 더 잘 해야죠."다시 일을 시작하면 힘들지 않겠냐고 하니 힘들어도 견딜 수 있다고 한다. 영수씨는 복직해서 현장 노동자들을 어떻게 만날지 고민이라고 했다. 고공농성 때부터 이어지고 있는 고민이다.
"지금도 현장은 여전히 임금이 삭감되고, 밖에는 해고 된 조합원들이 있는 상태에요. 전화를 해도 안 받는 동료들이 있어요. 마음이 아프죠. 복직해서 들어가는 의미가 크지만, 기대감은 별로 없습니다. 기대를 해서도 안 되고요. 노동조합도 같이 하고, 자연스럽고 편하게 웃으면서 일하는 현장이 되면 좋겠지만.. 사람 대 사람으로 어떻게 하청노동자들을 만날지 고민하고 있어요. 밑에가 좋죠. 사람은 역시 땅바닥을 밟고 살아야 해요."영수씨는 고공농성 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지만, 역시 땅이 좋다며 아직 고공농성 중인 노동자를 걱정한다. 공장으로 돌아가는 이들의 첫 걸음에 따스한 겨울 햇살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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