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와 함께 우리 집에 등장한 물품들. 수유패드, 요람, 등받이, 손수건, 로션 오일, 온도계, 보온병, 기저귀, 유아 손톱깎이, 시각 자극용 장난감 등 누워 있는 손자 주변의 물품들만도 합치면 가격으로 수십 만원 어치는 족히 된다.
김창엽
약 10년 전 덜 벌어 덜 쓰겠다는 생각으로 시골에 내려왔다. 그리고 지금껏 만족스러웠다. 더구나 내 경우 "쌀 떨어지면 세간이라도 팔고, 그나마 팔 것이 없으면 하루 두 끼만 먹고, 두 끼도 안 되면 한 끼 먹고 그도 안 되면 하직하자"는 결심 아닌 결심을 오래전부터 다져온 터여서 수입이 시원찮아도 마음만은 일종의 자기 암시로 '든든'했다.
그런데 갓난쟁이 손자와 지극정성으로 제 새끼를 살피는 딸을 보면서, 철학이랄 것까지도 없는 내 결심을 눈곱만큼도 실천에 옮길 수 없었다. 한 달 10만 원 남짓이면 충분했던 난방비 지출을 30만 원 수준으로 올릴 정도로 과감하게 기름보일러를 트는 등 지출을 아끼지 않았다. 먹을거리야 말할 나위도 없다.
게다가 인성 빼놓으면 시쳇말로 정말 '시체'인 아이 엄마는 손자가 혈변으로 출산 직후 중환자실에 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최소 기십 만원 어쩌면 1백만 원 안팎으로 추정되는 '거금'을 불우 아동들을 위한 단체에 입금했다. 우리 새끼는 그나마 복 받은 것이고, 세상에 정말 어려운 아동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평범한 사실들이 갑자기 망치처럼 머리를 때렸다나 어쨌다나 하며….
내 새끼들의 경우 풍족하게까지는 못 키웠지만, 그간 천운으로 경제적으로 궁핍하게까지 만들지는 않았다. 한데 손자 출산에 우스개로 기둥뿌리가 흔들리는 걸 느끼면서, "돈 좀 벌어봐야겠다"는 생각을 난생 처음 하게 됐다. 그만큼 지금까지 팔자가 좋았다는 뜻일 수도 있겠다.
마음먹는다고 돈이 벌리는 것은 아니겠지만, 60살이 코앞인데도 불구하고 손자를 생각하면 없었던 근로의욕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말하자면, 대책 없는 대출도 해보고 또 돈 좀 벌어보겠다는 적극적인 생각도 할배가 되면서 생애 최초로 가져보게 된 것이다.
정색하고 말하건대, 소득이나 재산규모에서 나나 우리 집은 한국인 혹은 한국 가정 평균치를 넘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난 현 상황을 충분히 감당해나갈 것이다. 손자를 내 손으로 키워보니 정말 가슴이 아픈 건, 저조한 수입으로 아이를 갖지 못하는 젊은 부부들이나 자녀의 이혼 등으로 인해 손주 양육을 떠안게 된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의 존재다.
한국 사회는 출산을 장려하기 전에, 젖먹이를 포함한 아동들의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닥쳐 보니 이거 진짜 심각한 문제이다. 제 새끼 제대로 돌보기 힘든 비정규직 미혼모나 어린 손주 양육에 힘부쳐 하는 조손가정의 할머니, 할아버지들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져 있을 걸 생각하니 눈물 난다. 더구나 이런저런 이유로 키울 형편이 못 돼 버려지는 젖먹이들을 상상하면 공황이 생길 지경이다.
젖먹이 양육이 온전히 가정이나 개인의 책임일 수는 없다. 적어도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사회가, 공동체가 책임지고 아동 양육을 해야 하지 않을까? 누구 불러줄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조만간 손자가 서울의 제집으로 돌아가면 아기 돌봄 도우미 자원봉사라도 해 볼 심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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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 태어난 지 한 달... 어라, 천만 원이 어디 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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