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도서관(옛 서울시청)에 걸린 문구가 내게 말한다. '처음 뵙겠습니다. 오늘입니다.'
신영웅
[기사 수정 : 2018년 1월 16일 오전 11시 40분]#퇴근길에 고개를 돌리다
퇴근길 괜히 서울광장을 가로지르고 싶은 마음에 평소 타는 버스 대신 지하철 역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 무심코 서울도서관에 시선이 머무르고, 눈길 끝에 잊고 지내던 기억이 시작된다, 행복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하던 그 때가.
'오늘담보대출', 오늘을 담보로 언제 올지 모르는 내일에 있을 행복을 기대하며 살았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대학가서 하고 싶은 대로 해"부터 시작해서 "취직하면 실컷 하면 되잖니?"라는 불멸의 레퍼토리로, 오늘을 희생해 내일을 준비하는 이솝우화에 등장하는 개미처럼 살 것을 교육 받았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10분 남짓이면 끝이 나는, 그래서 개미의 행복한 결말을 우리는 목격하지만 우리 인생에서는 개미와 같은 따뜻한 겨울은 빨리 오지 않는다. 나의 부모님이 그렇게 살았고, 선배들도 그렇게 살고 있었기에 내게도 이런 삶의 방식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물론 지금도 우리 부모의 삶이 틀렸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그들의 삶을 존중하고 부끄럽지 않은 삶을 보여주신 그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다만 정답이 삶의 길에 정답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조금씩 깨달으면서 고민은 시작된다.
#곽백수 작가를 만나다 당시 홍보실 막내로 선배들의 보조역할을 충실히 하던 때였다. 그들의 말이 진리였고, 법전이었고, 미래였다. 부모 대신 회사 선배들의 보호 속에서 치열하게 살고 있던 나는 한 웹툰 작가와의 만남으로 삶의 궤적이 완전 변해버렸다. 그가 던진 몇 마디 말로 '오늘담보대출'의 대출이자가 아까워졌다.
홍보실은 업무 특성상 언제나, 항상, 매일, 늘 살얼음판을 건너는 것과 같이 일을 한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상황의 연속이다. 그래서 항상 레이더를 세우고 있어야 하며, 자연스레 야근이 많은 구조다. 특히 그날따라 더더욱 일이 많았던 (내가 진짜진짜 좋아하는) 선배가 나를 불렀다. 자신이 내일까지 보고해야 할 게 있어서 대신 인터뷰 지원을 나가줄 것을 부탁했다.
다른 선배들의 백업을 해야 해서 나 역시도 일이 많았지만 그래도 그날따라 뭔가 위로가 받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택시에서 잠깐 졸아도 되니 흔쾌히 승낙을 했다. 사실 택시에서 잠깐 조는 게... 그게 또 아는 사람만 아는 숨통 트이는 순간이다. 군대에서 화장실에서 초코파이 먹는 것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예상보다 인터뷰가 일찍 끝났다. 그렇게 자리를 파하려고 하는데, 곽 작가가 날도 좋은데 평상에서 맥주나 한잔 하자고 했다. 평소 같으면 얼른 자리를 털고 복귀를 했을 텐데 그날따라 또 이상하게 몸이 스르륵 평상으로 갔다. 누군가에게 억지 호감을 얻기 위해서 말을 하는 것이 아닌데도 사람을 끌어들이는 마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며.
그렇게 시작된 평상 대화는 내 인생을 뒤흔드는 결과를 만들었다. 그는 일반적인 직장생활을 한 적도 없지만 도사 같은 말들을 쏟아내며 나와 기자들의 입에서 끊임없는 탄식이 나오게 만들었다. 직장 경험이 없는 그가 우리보다 직장인의 애환을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냥 들어서 아는 겉핥기 느낌도 아니었다.
#퇴사를 결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