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이야기를 들려주신 기장해수담수화반대대책위원회 주민 분
청년초록네트워크
처음 운동을 시작할 땐 다들 "왜 쓸데없이 나서냐"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벽에다 이야기하는 기분이었다고도 한다. 말은 그렇게 해도 다들 주의 깊게 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기장 해수 담수화 계획이 발표되고 난 후였다. 방사선을 잔뜩 받은 핵발전소 인근의 해수를 수돗물과 생수로 만든다는 것이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계획이 발표되자 그동안 무관심했던 어머니들끼리 조직적으로 등교거부운동을 하고 시청을 습격했다. 등교거부를 하지 않을 때에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시위하다가 집에 와서 아침을 차리고 다시 나와 투쟁했다. 몸만 힘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준전문가 수준으로 알아야 했다. 아는 게 없으면 따지고 싸울 수 없기 때문이다. 가는 곳마다 싸움이 붙었다. 시청 직원들 중 이 두 분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물론 잘 싸우고 잘 안다고 일이 척척 진행됐던 것은 아니었다. 지역유지들은 유착관계가 있어서 해수 담수화에 찬성했으며 수없이 많은 반대에 부딪혀야 했다. 모여서 눈물을 흘리는 서로를 달래야 할 정도로 힘들었으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결국 기장 해수 담수화에 대한 주민투표까지 했고 결국 선택적 물 공급이라는, 사실상 담수화 저지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이들은 앞으로도 싸울 것이라고 한다. 이번엔 기장 해수 담수화 저지가 아닌 핵발전 저지를 위해. 기장 주민들이 해수 담수화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으리라는 것은 분명한 만큼 해수를 담수화하지 않아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 이들은 해수 담수화 저지를 위해 싸우며 이 사실을 깨달았고 따라서 탈핵을 위해 싸우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 역시 알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선택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공론화라는 명분 아래, 핵발전소 인근 주민들의 목소리는 검토하지 않은 채,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재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병수 부산시장은 '선택적 물 공급'이라며, 위험성도 알리지 않은 채 취약계층 40만 명에게 기장해수담수화로 생산한 물을 공급하고 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1박 2일 동안 들었던 많은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도시에 사는 청년들에게 탈핵운동이란 어떤 것일까?
나는 월성에 살지도, 울산에 살지도, 기장에 살지도 않는다. 나는 핵발전으로 인해 건강상의 피해를 입지도 않고 지진에 대한 공포에 떨지도 않으며 핵발전소 근처의 물을 마시거나 사용할리도 없다. 하지만 당연히 이곳에도 사람이 산다. 그리고 나는 나의 편의를 위해서 누군가가 그런 피해를 입는 것을 당연히 반대한다. 그것이 원활한 전기 공급을 위해서든 경제성장을 위해서든 우리는 사회 구성원에게 그런 희생을 강요할 권리가 없고 그런 행위엔 정당성도 없다. 하지만 나는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전기를 쓰면서 살고 있다. 밀양, 청도, 당진 등등 고압 송전탑들의 덕을 보며 살고 있다. 지금 당장은 이것을 피할 방법이 없다. 그렇기에 도시에서의 탈핵운동이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다.
핵발전으로 인해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고통 받지 않도록 선택하고 결단해야 하는 것은 우리다. 이들이 겪는 고통 앞에 서서 "어쩔 수 없잖아"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선택하지 않았다"라고 말해야 한다. 월성, 울산, 기장의 주민들이 고통 받기를 선택하지 않았듯이 우리는 이들의 희생을 기반으로 풍요를 누리길 선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질 나쁜 풍요'를 거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핵발전과 그에 수반되는 희생들을 필요로 하는 체제와 그 체제를 "어쩔 수 없"다며 떠받치고 있는 우리의 사고방식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우리는 탈핵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생명을, 공존을, 평화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판도라탐사대 4월 탐사 ①]
"당연히 이곳에도 사람이 산다" 핵발전소 곁에 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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