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못해 귀가 예쁘다는 말도 들어봤다. 배우 강수연의 귀를 닮았다나? 나는 강수연 귀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사진은 지난 2016년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강수연 당시 집행위원장)
유성호
사실 난 성형을 한 적이 없다. 채색이 아름다운 그림을 배경으로 살굿빛 조명을 받으며 레몬색 가운을 입고 있으면 재투성이도 신데렐라처럼 보인다. 다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잘 알기 때문에 "그렇다"고 답할 뿐이다. 바비 인형 같은 사람이 "다이어트 한 적 없어요. 원래 먹어도 살이 안 찌는 체질이에요"라고 하거나, 피부가 밀가루 반죽 같은 사람이 "피부 관리 같은 거 받은 적 없어요. 화장품도 로드숍 제품만 써요"라고 했을 때의 분노나 알 수 없는 적개심 같은 것을 이해하는 까닭이다.
내가 "그렇다"라고 대답하는 순간, 그들의 얼굴에 감도는 안도감('그럼 그렇지!')과 약간의 우월의식('했는데 저 정도야?') 비스름한 게 스치는 것을 보며 내 하얀 거짓말이 '선의'임을 확신한다. 내 이목구비를 희생해서 다른 사람들의 자존감을 세웠으니 나는야 진정한 나이팅게일 아닐까.
사람들의 처진 눈꼬리가 올라간 만큼, 주저앉은 콧대가 세워진 만큼, 감긴 눈이 떠진 만큼 자존감이 올라가기도 한다. 특히 십대일수록 더 그렇다. 외모 때문에 놀림 받았거나 위축된 아이들은 변한 모습에 빠르게 반응한다. 얼굴이 바뀌면 표정이 바뀌고 표정이 바뀌면 걸음걸이까지 바뀐다. 이런 사람들을 볼 때면 내가 다 뿌듯하다. 맹장수술만이 사람을 살리는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반대인 경우도 있다. 안 해도 충분히 예쁘거나 해도 별반 효과를 보지 못 할 거 같은 사람에겐 부작용을 크게 말한다. 무시무시한 부작용이 찍힌 사진들을 일부러 펴 놓으며 "이런 경우가 생각보다 흔해요"라고 말한다. 예를 들면 키 165cm에 몸무게 52kg인 사람이 지방 흡입을 하고 싶다며 얇은 배를 보일 때, U라인의 턱을 V라인으로 깎아달라고 할 때, 뒤통수를 탁 치면 눈알이 툭 빠질 것처럼 눈이 이미 큰데 더 키워달라고 할 때 등이다.
하지만 아무리 말려본들, 이런 사람들은 다른 데 가서라도 꼭 한다. 사람마다 만족의 기준이 다르니 할 말은 없지만, 나는 최소한 간호사의 품격을 팔고 싶진 않아서 권하진 않았다. 아마도 더 많이 수술을 유치하면 월급을 더 주는 성과급제도가 없어서일지도.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이런 제도가 없는 게 다행이다.
마스크에 목도리로 머리까지 둘둘 말고 눈만 보이는 여자가 왔다. 사자 앞에 앉은 초식동물처럼 안절부절못하는 그녀는 출산휴가 간 후배를 찾더니 빈 상담실이 있는지 물었다. 그녀와 빈방에 들어갔다. 여전히 목도리를 풀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녀에게 녹차를 건네며 마주 보고 앉았다. 공기는 점점 무거워졌고, 나는 이 공기를 흩트리려 "날씨가 춥죠, 겨울이 오려나 봐요" "식사는 하셨어요?" 란 말들을 허공에 뿌렸다. 그녀는 대답 대신 목도리를 풀었다.
그녀의 목과 얼굴은 머리와 눈을 제외하고는 오래된 화상 자국으로 엉겨 붙어 있었다. 6개월 전 이곳에서 2차 피부이식수술을 했었고 3차 수술을 예약하러 왔단다. 손가락이 유난히 가는 23살의 여린 그녀는 둘만이 있는 공간으로 들어오자 이내 차분해졌다.
'짠돌이' 원장의 반전... 자세히 보니 예뻤다그녀를 원장실로 데려가는 대신 나는 원장에게 차트를 건네며 그녀가 옆방에 있음을 알렸다. 원장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옆방으로 가더니 그녀를 보고 반가워했다. 잘 지냈냐는 안부를 주고받은 후 원장은 얼굴을 세밀히 살폈다. 많이 좋아졌다며, 앞으로도 몇 번은 더 해야 하는 장기전이니 밥도 잘 먹고 많이 웃으라고 했다. 수술 후에 회복되면서 많이 웃어야 피부가 늘어나 자연스러워진다며.
마지막에 원장은 "눈이 예쁜 ○○씨"라고 말했다. 가만히 보니 진짜 눈이 예뻤다. 화상에 가려 보이지 않던 눈이, 선한 눈망울이 보석처럼 빛이 났다. 진주를 만든 조개처럼, 두 눈꺼풀 사이에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쏟아낸 뒤 지금처럼 빛나게 됐을까. 아니, 빛을 되찾게 됐을까. 그걸 발견한 원장도 달라 보였다.
놀란 건 그 다음이었다.
"감사해요 원장님. 이렇게 무료로 계속 치료를 받아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죄송해서…" "그런 소리 말고 내가 내준 미션은 잘 하고 있죠? 하루에 한 시간 산책하기. 집에만 있으면 안 돼. 자꾸 나가야 해. 알겠죠?""네, 하고 있어요." 그녀가 가고 동료 간호사에게 들었다. 원장은 사정 딱한 사람들을 무료로 진료한다는 사실을. 아니 이런 미담은 주로 큰 병원에서 홍보용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원장은 절에 다니는 불자면서 감히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고 있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