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즈카 오사무의 만화를 소개하는 공식 웹사이트테즈카 오사무의 만화를 소개하는 공식 웹사이트 '테즈카오사무매거진' 첫 화면. 유료회원 가입을 하면 오사무의 여러 인기만화를 볼 수 있지만 <깊은 땅굴>은 없다.
테즈카오사무매거진
<긴 땅굴>은 만화잡지 <선데이마이니치> 1970년 11월 6일자 증간호 '극화와 만화 제4집'에 딱 한 번 등장, 이후 <공기의 밑바닥(하)> 초판본에 실린 뒤 개정판에서는 자취를 감췄고 전집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다양한 일본만화를 평가하며 소개하는 블로그 츠루고어XXX(ツルゴアXXX) 운영자(이 운영자는 자신의 신원을 밝히지 않았다)의 말을 들어보자.
"이만큼 메시지가 강한 작품이 완전히 봉인되어있는 것은 매우 아깝다...라고 해야 할까 잘못됐다는 기분이 든다"라고 적었다. 또 "이 작품은 차별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장면(라스트신)을 보듯 오히려 직접 차별에 반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작품을 접한 일본인들 사이에서 호불호는 엇갈릴지언정 이 만화가 '재일조선인의 차별을 다룬 문제작'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과거사를 반성 않는 극우화 분위기로 치닫는 오늘의 일본을 떠올리면 우리에게도 무척 기념비적인 작품인 것.
<긴 땅굴>의 봉인 이유에 대해서는 작가가 직접 밝힌 바가 없어 온갖 의혹만 무성하다. 재일조선인차별문제를 다뤄서 우익세력에게 압박을 받지 않았을까, 완성도가 낮아 전집에서 제외하지 않았을까, '어떠한 사정'으로 오사무 본인 스스로 봉인을 결정하지 않았을까 등등 모두 짐작뿐이다. 봉인의 이유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는 걸까?
봉인되어야 했던 재일조선인 차별문제
현재로선 (추측컨대) 재일조선인 문제를 껄끄러워 한 정관계의 '높으신 분들'이 출판사나 오사무 본인에게 직접 압력을 가해 <긴 땅굴>을 봉인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마찬가지로 단편집 <공기의 밑바닥>에 실린 밤의 목소리<夜の声>의 경우 이후 전집에 수록됐기는 했지만 권력층들이 민감하게 여기는 대사가 통째로 교체돼 의문을 자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밤의 목소리>의 초판은 일본의 최하층 천민 출신인 부라쿠민(부락민:部落民)의 차별을 다뤘다. 여주인공 '유리'는 일본을 떠나 베트남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후 유리가 전도유망한 일본인 청년 사장의 프로포즈를 거절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부라쿠민임을 밝힌다.
"아하하하하 결혼 같은 걸 할 수 있겠어요!!""나는 말이죠. 부라쿠민이에요.""어때요? 내가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유를 알겠죠. 아저씨"- 유리가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거지로 변장한 아저씨(청년 사장)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으며부라쿠민은 우리네 백정, 망나니, 광대 등에 해당한다. 이들은 보통사람들이 꺼려하는 가축 도살, 가죽을 활용한 신발 제작, 형장의 사형 집행, 예능, 시신 매장 등의 일을 도맡아 했다. 또 정책에 따라 평민들과 구분되는 특정지역(부락)에 모여 살았다. 신분제가 철폐됐지만 부라쿠민의 후손들은 지금도 차별이라는 족쇄에 사로잡혀 있다. 가령 취직, 결혼을 앞두고 상대방이 부라쿠 출신임이 알려지면 당장 없던 일로 물리고 손가락질 하는 상황이 버젓이 발생한다.
<밤의 목소리>의 경우 이후 개정판에서는 유리의 신분이 부라쿠민에서 '전과 6범'으로 뒤바뀌어 등장한다. 자세한 영문은 알 수 없지만 츠루고어XXX는 "유리가 실은 부락민이라는 설정은 당시 게재잡지(선데이마이니치)와 이 버전(<공기의 밑바닥>의 1970년 초판본)에서밖에 볼 수 없다"고 설명한다. 반면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다룬 작품은 어떤 수정도 없이 그대로 실렸다. 차별이라는 주제가 꺼려졌다면 이 역시 수정되거나 삭제됐을 텐데 말이다. 뭔가 수상쩍다.
단편 가운데 흑인을 몹시도 경멸하는 악랄한 인종차별자 남성이 나오는 <죠를 방문한 사나이>를 보자. 베트남 전쟁 참전 당시 중상을 입은 오하라의 몸에 부하였던 흑인병사 '조'의 심장이 이식된다. 이후 오하라가 '자신이 흑인이 돼 더러워졌다'면서 스스로 연인을 멀리하고, 할렘에 거주하는 조의 가족을 찾아 총부리를 겨누는 장면이 실감나게 담겨있다.
이런 여러 정황을 종합할 때 출판을 검열하던 권력가들은 일제의 실상과 재일조선인 차별을 적나라하게 폭로한 <긴 땅굴>에 유독 노골적인 경계심을 품었음이 분명하다. <밤의 목소리>야 말미에 나오는 대사 한 줄 고치는 정도로 'OK사인'이 떨어질 수 있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재일조선인 차별문제를 다루는 <긴 땅굴>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던 게 아니었을까. 이후 '긴 땅굴 봉인 작전'이 암암리에 오사무와 출판사를 옥죄는 방식으로 자행됐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오사무와 재일조선인
이대로 멈춰있을 수 없어 재차 추적에 나섰다. 재일조선인에 대한 오사무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귀중한 글을 포착했다. 그는 1966년 북한과 가까운 재일동포단체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의 기관지 <조선신보>에 기고했다. 글을 번역해 소개한다.
"조선사람들은 스스로 원해서 일본에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일본군국주의에 의해 희생되고 민족역사를 빼앗기고 짓밟혀 강제노동에 동원당해 오게 된 것입니다. 정말 궁핍한 생활에 허덕이며 편견과 경멸 속에서 몇 십 년이나 살아내 온 것입니다. 저는 일본인으로서 정말 부끄럽고 면목이 없습니다. 조선인이 어째서 자국역사와 문화를 조선인교사에게 조선어로 배우지 못하는 것일까요. 거꾸로 생각해보지요. 우리는 조선인에게 자행한 과거 일본군국주의의 탄압정책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오히려 우리는 똑같은 일을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을 만큼의 반성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글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다음과 같다. 첫째 오사무는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 둘째 재일조선인의 심정을 공감하고 있다. 이 글이 나오고 4년 뒤인 1970년에 <긴 땅굴>이 발표됐다. 오사무는 만화를 그리기 이전부터 재일조선인의 차별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다.
1960~1970년대 당시 일본 전국에서는 조선학교 출신들이 집단으로 폭행당하는 사건이 연이었다. 1963년에는 함경남도에서 태어난 재일조선인 출신 유명 프로레슬러 역도산(力道山, 한국명 김신락)마저 칼에 찔려 비명횡사했다. 한편으로는 이에 저항해 조선(조선 초, 중, 고, 대)학교의 정식학교 인가 및 차별철폐 요구에 힘을 싣는 일본인 지식인들도 많았다. 재일조선인 밀집지역과 가까운 오오사카(大阪)에서 나고 자란 오사무 또한 이 저항운동의 물결에 동참했을 가능성이 퍽 높아 보인다.
벌레를 사랑한 만화광 소년의 어린 시절
오사무의 사상은 '어린아이의 행복'과 '자연과의 공조'로 압축된다(오사무는 자신의 이름(治)에 한자 忠(벌레충)을 덧붙여 '治忠'란 필명을 스스로 지을 만큼 벌레를 사랑했다). 생애 말년의 오사무가 진솔한 이야기를 펼쳐낸 자전적 에세이 <유리의 지구를 구해라(ガラスの地球を救え)>를 좀 더 들여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