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빌리의 노래> 표지.
흐름출판
J.D. 밴스가 쓴 책 <힐빌리의 노래>에서 '힐빌리'는 미국의 쇠락한 공업지대인 러스트벨트 지역에 사는 가난하고 소외된 백인 하층민을 가리키는 말이다. 빈곤과 차별, 약물중독과 폭력이 만성화된 힐빌리 마을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기회의 평등'은 어떻게 보장될 수 있을까. 끝모를 절망에 갇혀 꿈을 가질 의지마저 상실한 채 무너져가는 사람들의 삶에는 복잡하고 무거운 물질적, 정신적 문제가 중첩되어 있다.
가난한 아이들이 무엇 때문에 학교 생활을 엉망으로 하는지, 그 원인을 찾는 회의 내내 공공 기관의 책임만 언급하는 부분은 쉬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의 선생님이 최근 내게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우리가 방황하는 아이들의 목자가 돼주길 바라지. 그런 애들 대부분이 늑대에게 길러진다는 현실을 툭 까놓고 얘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게 문제야."..(중략)...기회를 가로막는 진정한 장애물은 내가 다녔던 표준 이하의 공립학교가 아니라 거듭되는 이사와 싸움이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사랑하고 잊어버리길 끝없이 반복해야 한다는 현실이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나는 거의 벼랑 끝에 몰려 있었다. (211쪽)빈곤은 경제적 측면으로만 접근할 수 없는 사회병리학적인 문제를 동반한다. 빈곤하고 폭력적인 가정에서 태어난 것이 스스로의 선택이 아니므로, 사회적 격차와 고립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과 열패감은 상당할 수밖에 없다. 빈곤하므로 모든 아이들이 다 잘못되는 것은 아니지만, 빈곤은 아이들의 안전하고 행복한 성장을 위협하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밴스의 눈에 비친 힐빌리들은 애초에 희망 따위를 꿈꿀 자유와 의지마저 박탈당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게으르지 않지만 일을 포기했고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지만 그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으며, 마약에 찌들어 생명이 위태로울 지경에 이르러서도 순간의 쾌락을 탐닉하는데 몰두한다. 과연 꿈과 희망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국가 차원의 사회복지적 개입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힐빌리의 노래>는 기사와 논문 속 빈곤 통계 지표들이 설명하지 못하는 빈곤한 삶의 속내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빈곤은 경제적 문제이자 심리사회적 문제이며 공동체 문화와도 깊은 연관을 맺는다.
절망의 바닥에서 건져올린 희망불행을 딛고 성공한 밴스의 삶은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개천에서 용이 난 것'이다. 그는 성공 이후에도 고향 마을 잭슨을 그리워했고 힐빌리들의 삶을 연민했다. 밴스는 최악의 순간에서 느낄 수 있는 두려움을 경험했지만 동시에 최고의 순간에서 느낄 수 있는 안정감도 맛보았다. 벼랑끝에서 흔들리는 그가 끝내 무너지지 않은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정신적 지지를 보내주었던 할아버지, 할머니 덕분이었다.
'한번도 나 자신에게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살필 책임감과 능력이 있다고 믿었던 적이 없었던"(277쪽) 밴스에게 책임감과 성실함을 가르친 것을 할아버지와 할머니였다. 일방적으로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를 보살필 수도 있는 존재라는 깨달음은 그의 인생을 바꿨다. 그는 백인 노동 계층의 어떤 점을 가장 변화시키고 싶으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자신의 결정이 중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마음"(292쪽)이라고 대답한다.
밴스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확고한 지지 덕분에 삶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고 결국 자신의 인생이 환경에 좌지우지 되지 않을 만큼 강해질 수 있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참혹한 절망의 한 가운데에도 반드시 희망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희망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이 있다는 믿음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힐빌리의 노래 -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J. D. 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흐름출판,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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