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갯길 마루에서 두고온 터전을 본다면...눈물, 이별, 고달픔, 한, 사연…으로 상징되었던 고개에서의 노래. 지나온 길이 보이고 집과 고향을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지점에 서게 된다면 장탄식과 신음이 저절로 터져 나오기도 할 것이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는 관련없는 비행기재 정상에서 찍은 사진으로 임실군 산서면과 장수를 넘겨주는 고개이다)
김길중
아리랑을 비롯한 민요와 대중가요, 그리고 문학 작품 속에 고개가 등장한다. 노래 몇 곡의 가사를 옮겨보겠다.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 / 항라 저고리가 궂은비에 젖는구려 / 왕거미 집을 짓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 울었소 소리쳤소 이 가슴이 터지도록충청북도 제천에서 충주로 넘는 고갯길이 박달재요, 그 님이 누구인지 몰라도 울고 넘는 고개였음을 노래하고 있다.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 지느냐 / 날 두고 가신 임은 가고 싶어 가느냐 /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 문경새재는 웬 고갠고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로구나<진도아리랑> 속에 문경새재가 등장한다. 거리가 상당한 진도에서 왜 문경새재가 나오는지에 대해 여러 추측이 있다고 한다. 강원도 일대로부터 아리랑이 불리다가 전국화하면서 따라간 구절이 문경새재를 담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 또 진도군 임회면에 문전새재라는 고개가 있었고 그게 잘못 발음되면서 문경새재로 둔갑한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어쨌거나 이 노래 속의 고개도 눈물의 소재가 된다.
한 곡 더 살펴보자.
미아리 눈물 고개 / 님이 넘던 이별 고개 / 화약 연기 앞을 가려 눈 못 뜨고 헤맬 때 / 당신은 철사 줄로 두 손 꽁꽁 묶인 채로 /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 맨발로 절며 절며 끌려가신 이 고개여 / 한 많은 미아리 고개창자가 끊어질 듯한 슬픔을 제목에 담고 있는 <단장의 미아리 고개> 가사이다.
맨드라미 피고 지고 몇 해이던가 / 물방앗간 뒷전에서 맺은 사랑아 / 어이해서 못 잊는가 망향초 신세 / 비 내리는 고모령을 언제 넘느냐 비까지 내리니 그 고갯길 넘는데 슬픔이 배가되지 않을까 싶은 <비 내리는 고모령>의 가사이다.
이 밖에 고개를 다루는 노래들은 한결같이 구슬프고 한을 담아내고 있다.
'이화령 고개 언젠가는 또 만나겠지 굽이굽이 울고 넘던 이화령 이화령 고개'(<이화령 고개>), '구름도 자고 가는 바람도 쉬어가는 추풍령 굽이마다 한 많은 사연'(<추풍령 고개>, 배호).그리고 그 절정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라고 저주하는 <아리랑> 속에서 볼 수 있다.
눈물, 이별, 고달픔, 한, 사연….
이런 것들에 엮어지는 게 고개를 대했던 우리 사회의 시선이었다. 고개를 노래할 때 으레 저런 단어들이 연상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떠날 일 없던 농경사회에서 미지의 세계로 넘어가는 통로의 정점이 고개였으니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전쟁과 중요한 사변과 같은 시기의 대치가 있던 곳에 고개가 등장하기도 한다. 우금치와 임진왜란의 배티와 곰티가 그랬다. 수많은 죽음과 삶이 엇갈린 곳이 고개였다. 사연 많은 어느 집안 딸내미가 팔려가며 마지막으로 살던 터전을 뒤돌아볼 수 있는 곳이 고갯길이었다. 우리네가 살아온 게 그랬고, 그 대목에 꼭 등장하기 때문에 고개가 이리 애달픈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