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년 전 한밤중에 끌려와 서산 개척단원이 된 윤기숙 할머니. 강제 노역에 시달리고 강제 결혼까지 당했다.
남소연
"그래, 수놓는 법을 가르쳐 준다고 했어유." 윤기숙(83)씨는 54년 전 자신을 생지옥에 떨어뜨린 '그 사람'의 말을 몇 번이고 곱씹었다. 윤씨의 고향은 전남 해남군. 큰집 사촌언니가 사는 서울에 놀러 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역전에서 붙들렸다. 소담스레 대화를 나누다 '무엇을 하고 싶느냐'고 물어 '집에서 수틀을 짰다'고 말했다. 그 두 마디 문답이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여기가 학원이라고 하대유. 수예학원이유. 지금 생각하면 민정식 서산개척 단장(현재 사망)이 보낸 사람이유. 그래서 따라 갔어유. (가기 전)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 데리고 가더니 한 상 걸게 차려주대요. 난 그걸 못 먹겠더라고유. 어딜 데리고 갈까봐 나를... 무서워서. 그리고 그날 밤, 트럭에 포장을 씌우더니만 10명을 거기 태웠어유."그렇게 도착한 곳은 수예학원이 아니었다. '서산자활개척사업장' 마을 초입에 내걸린 투박한 간판에는 그렇게 적혀있었다. "여기서 살 바에 징역 살지, 똑바로 못 산다, 도망가라." 도착한 첫날, 마을 사람 누군가 다급히 속삭였다. "다시 나가보니까 뺑뺑 보초를 섰더 만유. 싹 다 둘러 쌌어유." 결국 윤 씨는 마을을 빠져나가지 못했다. 그렇게 반백년이 흘렀다. 평생 "인정이라곤 없던" 남편은 40여 년 전 세상을 떠났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정권 초반 국토 간척 사업에 열을 올렸다. 충남 서산군 인지면 모월3리. 윤씨가 한밤중에 끌려온 마을도 간척 사업장 중 한 곳이었다. 오로지 노역을 위해 조성된 공동체.
1961년 11월 사업가 민정식씨가 국가의 하청을 받고 이곳에 개척단을 열었다. 단원 모집은 비자발적인 경우가 태반이었다. 역전에 홀로 앉아 있던 사람, 거리에서 주먹을 쓰다 경찰서에 잡혀 온 사람, 거리를 떠돌던 노숙인...
"얼마나 무서운 줄 알아유? 정말 무섭게 생겼었어."
할머니는 민씨의 이름을 말할 때마다 몸을 떨었다. 남성 단원이 강제 노역에 시달렸다면, 여성 단원은 강제 결혼을 당했다. 1963년에 이어 1964년 11월에는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225쌍이 합동결혼을 올렸다. 225명이라는 숫자는 곧 개척단의 '성과'로 기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