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정당공천제 필요한가?
경실련
정당공천제는 지방자치제도가 부활된 1991년부터 시행됐다. 1987년 민주화의 열망에 의해 지방자치를 받아들여야 하기는 했으나, 정당은 자신들의 지역적 기반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 결과 당시 여당인 민주자유당은 영남 등에서 야당인 신민주연합당은 호남 등에서 지역적 권력기반을 강화시키려는 목적으로 지방선거를 활용하려 했다. 그들 간의 정치적 타협의 결과가 정당공천제였다. 당시는 광역단체장인 도지사와 광역의원인 도의원, 기초단체장 후보까지 정당이 공천했다.
기초의원 선거 후보자까지 정당공천을 한 것은 2006년 제4회 지방선거였다. 헌법재판소가 2003년 5월 기초의원 후보의 정당표방금지를 규정한 공직선거법(84조)이 위헌이라고 판결한 까닭이다(헌재 2003. 5. 15. 2003헌가9 등).
헌재는 당시 다른 지방선출직은 정당표방을 하는데 기초의원만 금지하는 조항은 평등원칙에 위배된다고 봤다. 그후로 중앙정치의 지방지배는 더욱 가속화됐다. 광역자치단체는 선거구가 국회의원선거구보다 크므로 후보자 자신들이 마음만 먹으면 국회의원이나 당협위원장, 소속정당의 지배를 덜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기초자치단체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 경기도의 한 국회의원은 자신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지방의원에게 '이제 그만 할 거야'라는 등 협박성 발언을 하고 지방의원들은 그런 갑질에 대응조차하지 못하는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이런 행태는 정당공천제가 얼마나 오염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작은 사례일 뿐이다.
그동안의 연구를 종합해 보면 정당공천제의 폐해는 이렇다. 첫째, 지방선거가 지방정치가 아닌 중앙정치에 예속됐다. 지방선거의 쟁점이 여당의 중간평가가 돼버리기 일쑤였고, 지역의제는 설 자리가 좁아졌다.
둘째, 유권자들의 선택권을 제안하였다. 지역주의로 인해 지방의 1당 독점구조가 만연하면서 특정 정당의 공천이 당선의 보증수표처럼 돼 버린다. 그렇게 되면 유권자들이 선출한 게 아니라 정당이 선출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지방선출직 후보자가 정당유력자의 사적 자원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후보자들은 공천을 따내기 위해서 정당 유력자에게 무엇이든지 해야 한다는 말이 떠돌게 됐다. 공천권자에게 뇌물을 들고 가다 붙잡히기도 하고, 국회의원의 사적인 일을 챙기는 지방선출직 후보자들도 상당수였다.
넷째, 지방선거의 폐해만이 아니라 지방정부의 자치성과 자율성을 제약하는 요인이 됐다. 공천권에 목이 매인 자치단체장은 지방이 중앙의 파트너가 아니라, 지역 국회의원과 정당을 통해 중앙정치와 행정에 예속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지방자치의 본래의 뜻은 중앙지방관계가 수직적 통합모델이 아니라, 상호협력의 대등한 관계여야 하는데도 말이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기초선거의 정당공천제 없애야정당공천제도가 지방자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폐지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연의 법칙과 달리 인간사회의 행동양식을 정하는 제도란 그 시대의 정신이 반영돼야 하기 때문이다.
정당공천제 폐지는 이미 사회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합의가 됐다고 볼 수 있다. 2009년에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가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기초단체장 정당공천폐지에 77.6%, 기초의원 정당공천폐지에 86%가 찬성했다. 지방자치학회의 조사도 이와 유사해 유권자들의 의견은 오래전에 모아졌다고 할 수 있다.
정치권에서도 합의는 이뤄졌었다. 2012년 18대 대통령선거 때는 유력한 여야 후보들이 모두 당선하면 폐지하겠다고 했다. 당시 박근혜 후보는 기초자치단체의 장과 기초의원의 공천 폐지를, 문재인 후보는 기초의원 정당공천폐지를 내걸었다. 그리고 박근혜 후보가 당선했다. 하지만 그는 대통령이 된 후 한 번도 정당공천제 폐지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19대 국회는 2012년, 2013년에 정당공천제 폐지 법안을 여섯 차례나 냈다. 하지만 4년 내내 심의조차 안했고, 결국 자동폐기 됐다.
중앙의 정치인들이 겉으로는 정당공천제 폐지에 찬성하지만, '그 좋은 걸 왜 없애'라는 속마음을 갖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아마도 구태의 정치인들이 자신의 안위나 권력유지를 생각하고, 지방자치의 발전에는 눈을 감기 때문일 것이다. 대통령 탄핵도 생각해보면 지방자치와 분권이 되지 않은 가운데, 대통령 독단의 권력이 부른 참사였다고 할 수 있다.
정당공천제를 폐지하고 권력을 나누는 시도를 했더라면 양상은 달랐을지도 모른다. 이를 통해 적어도 대통령이 독점적 권력의 폐해를 인식할 수도 있었다. 또 정당들은 정당공천제 폐지라는 여론을 아프게 여겨, 당내민주화를 진전시켰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