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가해자는 자신의 가해 사실을 '호기심이지만 어쨌든 몹쓸짓'으로 서술하고 있다.
'서강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
한국에서 '강간'이 소비되는 법한국에서 성폭력 사건이 공론화되면 대개 다음과 같은 전철을 밟는다. 피해호소인이 '꽃뱀'일 거라는 의심이 늘 잔존하고 사건이 진행될수록 거세지는 식이다. 피해호소인에게 조그만 흠이라도 발견되면 기다렸다는 듯 여론이 돌아선다.
성폭력 수사가 무혐의로 결론 나거나 피해호소인이 무고죄로 고소당하면 비난은 더욱 거세진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무고죄도 무혐의 처리가 나면 그야말로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상황이 된다. 그러나 그땐 이미 사람들의 관심 밖이다.
최근 공론화된 한국 기업 내 성폭력 사건들도 비슷한 난항을 겪고 있다. 한샘 사건의 가해지목인은 무혐의 처리됐고, 현대카드 피해호소인은 무고죄로 고소당했다. 이들이 '피해자'인지 '꽃뱀'인지를 판단하겠다고 나선 사람들로 인해 2차 피해 문제도 심각하다.
피해자를 두고 심판이 난무하는 동안 성폭력 사건의 특수성은 고려되지 않는다. 성폭력 사건은 대개 목격자가 없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다른 주장을 한다. 피해 사실 자체를 입증하는 게 어렵다는 뜻이다.
게다가 성범죄에 대한 왜곡된 통념으로 인해 수사과정에서 2차 피해가 발생하기도 하고, 사법기관의 법규 해석이나 적용 자체가 남성 중심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요즘에는 성폭력 고소 사건이 종결되지 않았음에도 무고 맞고소를 하는 경우가 많아, 피해자가 무고 수사를 함께 받으며 무죄를 증명해야 한다.
성범죄를 용인하는 강간 문화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6년 전국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남성 응답자의 55.2%가 "여자들이 조심하면 성폭력을 줄일 수 있다"고 답했다. 56.9%는 "여자가 알지도 못하는 남자의 차를 얻어 타다 강간을 당했다면 여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데, 47.7%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성폭행을 당했다면 여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데 동의했다.
바꿔 말하면, 피해자가 조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이다. 술에 취했거나, 남자의 차를 얻어 탔거나, '성폭행을 당할 법한' 옷차림을 했다거나. 성범죄의 원인을 피해자로부터 찾으려 애쓰는 게 사회 구성원 다수의 인식이다.
심지어 "어떤 여자들은 성폭행당하는 것을 즐긴다"는 응답도 8.7%에 달했다. 성범죄를 포르노적 서사로 소비해 온 남성적 문화가 왜곡된 인식에 일조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구글 트렌드 분석 결과 '강간'의 관련 검색어 2위는 '19', 3위는 '토렌트', 7위는 'av', 9위는 '강간 사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