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브라락.
이철영
아우구스티노는 나와 52세 동갑이었다. 우리 나이로 치면 나보다 한두 살 많은 나이일 것이나, 우리는 친구가 되었고, 산행 내내 전담비서처럼 내 옆을 지켜줬다. 그는 자식이 넷인데, 대학에 다니는 큰 아이를 자랑스러워 했고, 막내는 초등학교에 다닌다고 했다.
그는 정상 정복 이후 탈진한 이 작가의 봇짐을 하산길 내내 대신 메고 다녔다. 그의 얼굴에는 산전수전 다 겪은 고단한 삶의 흔적이 배어 있으나, 넉살이 좋았고, 아주 작은 호의에도 고마워하는 따뜻한 마음씨의 동네 아저씨였다.
산행 말미에 그는 아주 슬픈 표정을 지으며, "나는 옷이 한 벌밖에 없다. 당신의 바지를 주면 안 되겠냐"고 욕심을 냈다. 내 바지를 벗기려 하다니 내 마누라가 알면 어쩌려고 그러시나. 7,8년 가까이 입어서 본전 다 뽑았지만 편해서 내가 아끼는 옷인데, 탐을 내다니 쩝쩝.
그러나 어찌하랴. 그의 애절한 큰 눈을 직접 본 사람이라면 누구도 거절치 못하리라. 나는 아깝지만 이왕 빼앗길 것 흔쾌히 내어 주기로 하고, 덤으로 내 헤드랜턴까지 주기로 약속해 버렸다. 아우구스티노는 뛸 듯이 기뻐했고, 산행일정이 끝난 뒤 우리는 으슥한 곳에서 은밀하게 전달식을 가졌다. 소정의 웃돈까지 덤으로 얹어서.
산행의 반환점인 '제브라락'은 말 그대로 얼룩말 바위다. 4000미터의 고산에 느닷없는 얼룩말의 출현이라니, 산행객들에게는 신선한 볼거리다.